기업대계를 위하여 변화와 혁신의 신발끈 다시 묶자

부산항 자성대터미널.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기업할 맛이 안 납니다.”

2016년이 끝나갈 무렵 한 기업인이 뱉은 한탄이다. 세계 경기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내수도 꽁꽁 얼어붙었다. 규제는 여전히 기업을 옭아매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정치권은 혼돈 그 자체가 됐고 관료들은 일에 손을 놓은 상태다. 이 와중에 국회는 한국 대표 기업인들을 청문회장에 세웠다. 더 큰 문제는 새해에도 이런 경영 걸림돌들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 당장 주요 대기업 가운데 절반 정도가 새해 사업계획은 고사하고 임원 인사도 마무리짓지 못했다. 지난해 말 종무식을 건너뛴 기업이 대다수다.경영환경은 이보다 더 나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지만, 기업들은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 없다. 일에서 손을 놓는 순간 도태되기 때문이다.

변화와 혁신의 해

삼성그룹은 올해 대대적인 혁신을 한다. 1959년 이후 처음으로 그룹 컨트롤타워를 없앤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6일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겠다고 약속했다. 비서실, 구조조정본부, 미래전략실 등의 이름으로 60년 가까이 이어진 명맥을 끊겠다는 선언이다. 대대적인 인적 쇄신도 이뤄질 전망이다. 삼성전자를 사업회사와 지주회사로 나눌지도 올해 결정해야 한다.SK그룹도 강도 높은 혁신을 예고했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해 “변하지 않으면 돌연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고는 연말 인사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세대교체 인사를 단행했다. 최고경영진을 50대로 교체했다. 현대자동차그룹과 LG그룹도 변화와 혁신을 계획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변화 속도가 빠르지 않은 중후장대(重厚長大) 업계의 기업도 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포스코는 올해 사업구조 혁신을 가속화하는 데 전사적인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불확실한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모든 분야에서 기존의 틀을 바꾸기로 했다. 한화그룹과 GS그룹, 두산그룹 등도 혁신을 올해의 키워드로 내세웠다.

공격 투자 이어간다삼성전자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분야에서 ‘초격차’ 전략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대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인 26조원을 생산설비에 투자했다. 올해도 이런 기조는 계속된다. 첨단 입체(3D)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 등의 분야에서 경쟁사와 압도적인 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를 할 것으로 예측된다.

현대차그룹은 중국 시장에서 마케팅을 강화하고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라인업을 확대하는 등 새로운 먹거리 확보에 나선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각각 소형 SUV 개발을 완료했다. 내년 국내를 시작으로 해외 시장에 순차적으로 출시할 예정이다.

LG그룹은 프리미엄 가전 브랜드 ‘LG 시그니처’와 OLED 패널, 고부가 기초소재 등 프리미엄 제품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계획이다. 전장 사업도 LG의 신성장동력 중 하나다. LG전자 VC사업본부는 GM의 전기차 쉐보레 볼트 EV에 부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내년 전기차용 차량부품에서 본격적인 매출 성장이 이뤄질 전망이다.SK그룹에서는 SK하이닉스가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충북 청주에 2조2000억원을 투자해 첨단 낸드플래시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반도체 생산장비까지 합하면 15조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포스코는 ‘월드프리미엄(WP)’ 제품 비중을 확대한다. WP 제품은 세계에서 포스코만 단독으로 생산하는 월드퍼스트(WF), 기술력과 경제성을 갖춘 월드베스트(WB), 고객 선호도와 영업이익률이 높은 월드모스트(WM) 제품을 뜻한다. 포스코는 WP 판매를 강화해 수익성을 높일 계획이다.

GS도 신사업 진출을 고민하고 있다. 특히 GS칼텍스가 적극적이다. 허진수 GS칼텍스 회장은 작년 7월께 신사업 전담팀인 ‘위디아’를 신설해 직접 신사업을 챙기고 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