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업계 '트럼프 눈치보기'…크라이슬러도 항복

미국에 10억달러 투자 발표
트럼프가 GM·포드 압박하자 피아트크라이슬러도 고용 확대

트럼프가 BMW·다임러 공격 땐 자동차산업 의존도 높은 독일에 충격
이번엔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점유율 4위(2016년 기준)를 차지하고 있는 피아트크라이슬러가 행동에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도요타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에 미국 내 투자와 일자리를 늘릴 것을 노골적으로 압박하자 피아트크라이슬러가 2020년까지 미국에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화답했다.
세계 주요 자동차 기업이 잇따라 ‘트럼프 코드 맞추기’에 등 떠밀리면서 유럽 최대 자동차 제조국 독일에선 “자동차산업 의존도가 높은 것은 독일 경제에 독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마저 나온다.◆‘트럼프 코드’ 맞춘 크라이슬러

8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세르조 마르키오네 피아트크라이슬러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2020년까지 총 10억달러를 들여 미국 미시간주 워런과 오하이오주 털리도에 있는 기존 생산공장 설비를 교체하고 2000명을 추가 고용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피아트크라이슬러는 털리도공장에서 ‘지프’ 브랜드 신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2종을 만들고 워런공장에선 ‘지프’ 브랜드 신형 픽업트럭을 생산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멕시코 살티요공장 등에서 이뤄지던 ‘램’ 브랜드 픽업트럭 조립공정도 워런공장으로 옮기기로 했다. 마르키오네 CEO는 “SUV와 트럭 생산의 글로벌 중심지로서 미국 위상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블룸버그 등은 피아트크라이슬러의 이번 조치는 트럼프 당선자가 주요 글로벌 자동차 기업을 대상으로 미국 내 생산 확대와 고용 창출을 압박하고 나선 것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피아트크라이슬러는 멕시코에 7개 제조시설을 두고 램트럭과 소형차 ‘피아트500’, SUV인 ‘닷지 저니’ 등을 생산하는 등 멕시코 투자비중이 높은 기업으로 꼽혀왔다. 앞서 포드는 총 16억달러 규모 멕시코 산루이스포토시 소형차 생산공장 설립 계획을 취소하고 미시간주 플랫록에 7억달러를 들여 공장을 짓겠다고 밝혔다.

◆車업계 최대 당면 과제, 트럼프트럼프 당선자가 글로벌 자동차회사 ‘지형도’를 바꿔놓으면서 자동차 업계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트럼프 문제’가 떠오르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디트로이트모터쇼의 ‘화두’로 신차, 신기술이 아니라 트럼프가 떠올랐다”며 “세계 자동차 업체들이 트럼프 공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보도했다. 카를로스 곤 닛산 CEO는 “자동차 업체는 모두 한배를 탄 셈이 됐다”며 “자동차 업계가 트럼프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산업 의존도가 높은 독일에선 트럼프발 자동차 시장 지각변동이 독일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독일 일간 디벨트는 “독일은 자동차산업이라는 특정 업종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며 “트럼프 당선자가 멕시코에 공장을 둔 자동차기업을 타깃으로 삼으면서 폭스바겐, BMW, 다임러 등이 위험해질 경우 독일 경제 전반이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폭스바겐, 다임러, BMW, 로베르트보쉬 등 2015년 매출 기준 독일 500대 기업의 59%가 자동차 관련 업종에 속해 있다. 폭스바겐(80%), BMW(85%), 로베르트보쉬(80%), 콘티넨탈(79%) 등 주요 기업 매출 80%는 해외에서 나오고 있다.트럼프 취임 전 미국과의 마찰 소지가 있는 문제를 매듭지으려는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폭스바겐이 트럼프가 취임하는 이달 20일 전까지 미국 정부와 배기가스 스캔들과 관련한 벌금 협상을 마무리하기 위해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고 전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