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88올림픽, 월드컵, 평창, 그 많은 금메달…모두 뇌물인가

이재용 부회장이 외국으로 도주라도 한다는 것인지
특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 방침을 흘리고 있다. 특검은 삼성 미래전략실 최지성 실장(부회장), 장충기 차장(사장) 등에게만 구속영장을 청구할지 아니면 이 부회장까지 포함할지를 놓고 고민 중인 것처럼 보인다. 특검의 의도는 이미 다 드러나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죄 혹은 제3자 뇌물죄를 적용하기 위해 ‘뇌물을 준’ 기업인을 어떻게든 집어넣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의 승마 지원이 정말로 대가를 바란 뇌물이란 말인가. 갑의 위치에 있는 정부가 을인 기업인과 나눈 대화 가운데 한 대목을 잘라 이를 유죄 증거라고 삼는 것은 온당한 것인가. “한 문장만 주면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는 나치 괴벨스의 생각과 무엇이 다른가. 더구나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 때문에 구속하겠다면 더욱 말이 안 된다. 삼성을 3차례나 압수수색했는데도 여전히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미 출국금지 상태인 데다 검찰, 특검, 국회 조사에 성실히 응해온 이 부회장의 도주 가능성은 더 웃기는 얘기다.삼성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최순실 게이트 전반에 걸쳐 대기업들이야말로 정부의 공갈·강요·협박의 피해자인 것은 누구라도 아는 사실이다. 전두환 시절 해체된 국제그룹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나라를 위해’ 협조하라는 정부의 요청을 기업이 거부하는 게 가능했는가 말이다. 그런 현실을 가려놓고 이제 와서 ‘대가를 노리고 응했다’는 그림에 맞추려니 논리도 안 서고 꼬이는 것이다.

그렇게 보자고 한다면 지난 시절 정주영 현대 창업주가 뛰어서 이뤄낸, ‘바덴바덴의 기적’이라고까지 칭찬받은 88올림픽은 무엇인가. 정몽준 현대중공업 회장이 성사시킨 2002 월드컵은, 그리고 정부가 사면·복권까지 해주면서 이건희 삼성 회장을 통해 만들어낸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도 전부 뇌물의 연결고리로 봐야 한단 말인가. 정부의 외교채널이 약할 때 기업의 힘을 빌린 것도 그렇다. 일부 정권에서는 시급한 한·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대기업을 동원했다. 이런 사례 역시 뇌물로 엮을 것인가.

기업 활동에 막강한 규제권을 가진 정부가 대기업에 협조를 구해온 것도 관행이었다. 이 정부 들어서만도 전국 18개 도시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들면서 16개 대기업에 각 센터를 맡도록 요청했다. 승마협회를 비롯해 수많은 스포츠 협회도 같은 논리로 대기업이 맡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검의 논리대로라면 우리 대표선수들이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따온 그 많은 메달도 뇌물죄의 고리에 불과했나. 정부와 기업이 열심히 돕고, 선수들은 열심히 땀흘려 만들어낸 국민적 결실이었던 것이다.

마치 승마 지원이 하늘에서 떨어진 사건이라도 되는 듯 총수를 구속해서라도 엄벌하겠다는 특검이야말로 하늘에서 떨어졌나. 그러다 보니 억지스런 것이 한둘이 아니다. 엮어 넣는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