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정치가 뭐길래] 반기문의 '진보적 보수', 제3의길? 半半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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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저는 진보적 보수주의자” 발언 놓고 논란
반 캠프 측 “진보-보수 떠나 실용적 관점에서 접근”
“따뜻한 시장경제 실현하는 반기문식 제3의 길”
제3지대에서 ‘빅텐트’ 치기 위한 고리 역할로 삼을 듯
“‘선거용 구호정치’, ‘반기문식 半半화법’ 불과”비판도 제기돼
![](https://img.hankyung.com/photo/201701/AB.13155746.1.jpg)
‘진보적 보수주의’에 대해 반 전 총장 측은 ‘반기문식 제3의 길’이라고 하지만 ‘선거용 구호정치’, ‘반기문식 반반(半半)화법’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진보적 보수주의자를 내세우는 이유에 대해 캠프 관계자는 15일 “반 전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세계를 다녀보니 보수, 진보 어느 한쪽에 치우친 진영 논리로는 나라의 발전을 가져올 수 없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진보와 보수가 균형을 이루는 실용적 관점에 접근을 한 것”이라며 “진보적 보수주의라는 관점에서 성장, 복지, 노동, 조세, 안보 등 분야별로 구체적인 정책 방향을 다듬어서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산업화의 기존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새 패러다임을 내놔야 한다”며 “성장 기조 아래 소외계층을 보듬어 나가는, 성장과 복지가 균형을 이루는 방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진보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으면서 양측을 모두 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전략이다. 반 전 총장과 가까운 성일종 새누리당 의원은 “반 전 총장은 진보·보수 이런 걸 안 따지고 실용적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 측의 오준 전 유엔주재 한국 대사는 “(반 전 총장은)외교·안보는 전통적 스타일(보수)인 반면, 경제·사회 이슈들은 중도쯤 된다”고 했다. 반 전 캠프에 참여하고 있는 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따뜻한 시장경제’, ‘진화된 자본주의 5.0’을 ‘진보적 보수주의’의 일환으로 앞세우고 있다. 곽 교수는 “경제력 집중과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기업이나 부자들이 나눔 배려를 실천하는 따뜻한 시장경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곽 교수는 버핏세(부유층 자본소득에 적용되는 소득세)나 조지 소로스의 기부가 따뜻한 시장경제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양극화 심화와 사회적 저항을 불러올 수 밖에 없어, 민간 영역에서 자발적인 부의 재분배가 이뤄지는 쪽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반 전 총장이 귀국 기자회견에서 “나라는 갈가리 찢어지고 경제는 활력을 잃고 사회는 부조리와 부정으로 얼룩져 있다”며 “부의 양극화, 이념, 지역, 세대간 갈등을 끝내야 한다. 국민 대통합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고 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또 “재벌의 영향이 너무 크니까 중소기업이 살아날 길이 없다”며 “원칙적으로 재벌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도 같은 차원이다. 반 전 총장이 불평등 해소와 사회통합 등을 주장하는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의 자문을 받고 있는 것은 ‘진보적 보수’ 화두와 관련이 깊다.
반 전 총장이 귀국 뒤 연령·계층을 넘나드는 ‘이념적 종횡’을 하는 것은 ‘진보적 보수’ 전략의 일환이다. ‘진보적 보수’는 신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반대하고 새로운 사회발전 모델을 주창한 영국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제3의 길’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반 전 총장 측 관계자는 ‘진보적 보수’는 ‘반기문판 제3의 길’이라고 했다.‘진보적 보수’를 내세우는 것은 보수 연합만 가지고는 대선 승리가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13일 공개한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지율은 31%, 반 전 총장은 20%였다. 이재명 성남시장 12%,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7%, 안희정 충남지사 6%,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5%,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3%,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2% 순이었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반 전 총장 측은 국민의당, 바른정당,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 손 전 대표 등과 제3지대에서 ‘빅텐트’를 치기 위해 ‘진보적 보수’를 고리 역할로 삼는다는 전략이다. 김 전 대표는 경제민주화, 유 의원은 ‘따뜻한 보수’를 내세우고 있다.
보수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이들 세력들과 연대를 통해 중도, 수도권, 호남을 끌어들어야 대선에서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다. 때문에 반 전 총장 측은 당분간 새누리당과 보수와 일정 정도 거리를 둔다는 계획이다.반 전 총장의 이런 전략에 대해 반론도 적지 않다. 자칫 보수 집토끼를 놓칠 수 있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구에 지역구를 둔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새누리당 지도부가 친박(친박근혜)계 핵심을 몰아내려는 것은 반 전 총장 영입 전략과 맥이 닿아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반 전 총장이 중도, 진보를 표방하면 주요 지지 기반인 보수표가 떨어져 나갈수 있다”고 말했다.
야당은 반 전 총장의 정체성이 여전히 모호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최순실 사태로 보수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나빠지니 진보라는 수식어를 붙여 포장한 것일 뿐이라고 날을 세우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지금 우리 상황은 진보·보수 또는 좌우의 문제를 얘기할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고연호 국민의당 수석대변인은 “‘진보적 보수’라는 것이 참 묘한 말”이라며 “진보ㆍ보수의 이데올로기를 말하기 전에 반 전 총장은 자신이 무엇을 할 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했다. 유승민 의원도 “반 전 총장이 보수인지, 진보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