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트럼프 시대] 미국 공공인프라 D+ 수준…PPP로 '위대한 미국' 재건한다
입력
수정
지면A8
(3) 21세기 뉴딜, 1조달러 인프라 투자 - 한경·KOTRA 공동기획미국 미시간주 플린트시는 2014년 4월 수돗물 오염사태로 2만여명의 어린이가 납에 중독되는 사고를 겪었다. 지난해 초엔 주 전체에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문제가 발생한 지 3년이 다 돼 가지만 대응은 생수 공급, 의료 지원, 관련자 소송 등에 그치고 있다. 노후 파이프 교체공사를 포함한 근본적인 처방은 더디기만 하다.
3년 전 수돗물 오염사고 난 플린트시
2만여명 납 중독에 주민들 고통…예산난에 상수도 교체 5%도 안돼
해저터널 추가 공사하는 노퍽시
법 제정해 민간업체 참여 기회…재정부담 덜고 교통인프라 개선
민간투자 유도하는 트럼프
82% 세액공제에 추가 세감면…민·관 합작시장 연 150억달러 전망
플린트 시의회에서 만난 에릭 메이스 시의원은 “최소 3만1000가구의 상수도관을 바꿔야 할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5%도 바꾸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연방정부도, 주정부도 모두 재원이 빠듯하다 보니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이미지 크게보기재원 부족에 인프라 사고 빈번
미국이 노후한 인프라로 신음하고 있다. 플린트시의 납 수돗물 사태는 빙산의 일각이다. 도로가 꺼지고, 다리가 붕괴되고, 철도차량 탈선사고가 나는 등 노후 인프라로 인한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미국토목학회(ASCE)는 4년마다 발표하는 공공인프라 평가(2013년)에서 미국의 교통, 에너지, 상하수도, 전력, 공항, 수로·항만 등 인프라시설 수준을 ‘D+’로 평가했다. 재건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은 미국의 공공인프라 수준을 16위로 평가했다. 다른 선진국인 일본(9위), 독일(11위)에 크게 뒤처졌다.
개선이 시급하지만 재원이 부족해 발걸음은 더디다. 미국은 앞으로 10년간 노후 인프라 개·보수 및 신설에 총 3조3000억달러가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연방 및 주정부가 인프라에 쓸 수 있는 재원은 1조8000억달러에 불과하다. 매년 1400억달러(약 168조원) 정도의 예산이 부족하다.
공공+민간투자 방식 급부상미국 동부 버지니아주의 남쪽 노퍽시와 포츠마우스시를 연결하는 미드타운 해저터널은 1962년 개통된 뒤 55년이 지났다. 너무 오래된 데다 통행량이 많아 개·보수와 추가 터널 건설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2012년 추가 터널 공사에 들어갔고, 조만간 개통할 예정이다.
추가 터널은 민·관 합작 투자사업(PPP) 방식으로 건설됐다. 그동안 미국에서는 정부가 공공인프라 건설에 돈을 댔다. 재원이 없으면 채권을 발행했다. 그러나 갈수록 나빠지는 재정 여건으로 인프라 개선에 투입하는 돈은 줄어들었다.
버지니아주는 재원 조달방법을 바꿨다. 1995년부터 민간업자의 교통인프라 사업 참여를 허용하는 법을 제정했다. 미드타운 해저터널은 SKW 등 민간 6개 업체가 자금 조달부터 시공까지 일체를 맡았다. 주정부는 약간의 재정 지원과 행정 절차를 처리했다. 민간 컨소시엄은 터널 개통 후 58년간 시설을 운영한 뒤 주정부에 소유권을 이전한다. 한국에서도 익숙한 BOT(건설-운영-양도) 방식이다.오브리 레인 버지니아주 교통부 장관은 “민간업자에게 연 10~12% 정도의 수익을 보장해준다”며 “민·관합작이어서 재정 부담을 덜면서도 필요한 인프라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트럼프는 세금 감면까지 제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도 민간투자를 전제로 한 1조달러 인프라 투자를 공약했다. 민간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투자금의 82%를 세액공제해주고, 미국 기업이 해외에 쌓아둔 수익금을 들여와 인프라에 투자하면 미국 내 환입 시 10% 저율과세와 추가 세감면 혜택을 주겠다고 밝혔다. 주 및 지방정부에는 환경규제와 인허가권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버드대 공공정책대학원(케네디스쿨)은 앞으로 PPP시장이 연평균 16.5% 성장해 2018년이면 연 150억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차기 트럼프 정부가 내건 세감면 혜택까지 더해지면 시장은 더 커질 수 있다.
관건은 민간 업체의 사업 참여 가능성과 의회의 의지다. 민간업체를 ‘유인할 만한’ 인프라 사업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 사업이 있더라도 정치권의 반대도 돌파해야 한다. 민주당 상·하원 지도부는 트럼프 공약에 찬성하고 있다. 오히려 공화당 주류가 미지근하다.
인프라 투자가 트럼프 정부의 최우선 순위로 오를지도 관심이다. 트럼프 당선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조달러 인프라 투자를 추진하겠지만 임기 초반의 중점 과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오바마케어(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도입한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 폐지, 세제 개혁, 규제 완화 등 시급한 현안부터 처리하겠다는 의미다.
■ PPP
public-private partnership. 민·관 합작 투자사업을 말한다. 민간은 위험 부담을 지고 도로 등의 공공인프라 투자와 건설, 유지 및 보수 등을 맡되 운영을 통해 수익을 얻는다. 정부는 세금 감면과 일부 재정 지원을 해준다.
■ B-미국토목학회(ASCE)가 2013년 기준으로 미국 내 주요 인프라 중 가장 높게 매긴 등급이다. 쓰레기 처리시설을 평가한 점수다. 그다음은 철도·교량(C+), 항구(C), 공원(C-), 에너지시설(D+), 학교·도로·상하수도·대중교통·항공(D) 순이었다. 인프라 전체 등급은 D+였다.
노퍽·플린트=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