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조윤선 영장 청구…박 대통령 향하는 특검 칼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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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수사' 일단락박영수 특별검사팀이 18일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작성·관리한 혐의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78)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51)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현 정권에서 승승장구해온 ‘왕실장’과 ‘실세 장관’은 구치소에 수감될 위기에 처했다. 특검은 블랙리스트 작성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개입했는지를 확인할 계획이어서 대통령 수사도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다.
"좌파성향 문화예술인에 김기춘, 정부지원 배제 지시"
조윤선은 묵인·방조 의혹
'비선 진료' 김영재 원장도 조만간 영장청구 여부 결정
◆블랙리스트 ‘몸통’ 정조준특검팀은 이날 저녁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에 대해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또 “두 피의자는 수사 과정에서 지금까지 보여온 진술 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고 말했다. 국회 청문회에서 “블랙리스트는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고 증언한 대로 특검 조사에서도 혐의를 부인했다는 뜻이다.
특검은 그러나 그동안 확보한 청와대·문체부 직원들의 진술과 두 사람의 진술을 비교·검토한 뒤 이들에 대해 영장 청구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은 ‘좌파 성향’의 문화·예술계 인사 목록을 만들어 관리하며 정부 지원에서 배제하도록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국회는 국회 청문회에서 이 같은 혐의에 대해 “모른다”고 말한 두 사람의 증언이 사실과 다르다고 판단하고 특검에 국회에서의 증언·감정법 위반(위증) 혐의로 두 사람을 고발했다.두 사람의 구속영장이 청구되면서 블랙리스트 관련 특검 수사는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특검은 두 사람의 신병을 확보한 뒤 박 대통령이 이 사건에 개입했는지 조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두 사람의 구속 여부는 20일께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결정된다.
앞서 특검은 지난 12일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직권남용과 위증죄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비선 진료’ 의혹 수사도 속도를 내고 있다. 17일 김영재 성형외과 원장을 처음 소환해 의료법 위반 혐의를 조사한 특검은 조만간 그의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최순실 씨가 단골로 다녔다는 병원의 김 원장은 공식 대통령 자문의가 아닌데도 ‘보안손님’으로 청와대를 드나들며 박 대통령을 진료하고 특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박 대통령만 남았다”
특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뇌물죄’ 수사와 김 전 실장에 관한 ‘블랙리스트’ 수사라는 투트랙으로 수사를 하고 있다. 2월 초로 예상되는 박 대통령 수사도 이 같은 의혹에 집중될 전망이다. 특검은 박 대통령에 대한 수사 기회가 한 번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관련 수사를 빨리 마무리짓고 박 대통령에게 제대로 칼날을 겨누겠다는 계획이다.
법조계에서는 특검의 투트랙 수사가 헌법재판소에 주는 메시지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 탄핵과 뇌물죄 기소라는 성과를 노리고 있는 특검이 수사 전선을 가능한 한 넓혀 헌재에 압박을 주려는 전략을 쓰고 있다는 얘기다.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특검이 뇌물죄로는 ‘중대범죄’를, 블랙리스트로는 ‘사상의 자유’라는 헌법 위반을 강조하고 있다”며 “특검의 목표가 탄핵 인용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고 지적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특검의 블랙리스트 수사는 국정농단과 관계도 없는 ‘별건수사’”라며 “특검의 정치적 중립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