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헤비메탈·재즈와 결합한 국악 세계시장 파고든다

민요 록밴드 '씽씽', 글로벌페스트서 뉴요커 사로잡아
3인조 '잠비나이'·국악 밴드 '고래야' 등도 인기몰이
지난 8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세계 음악 축제 ‘2017 글로벌페스트(globalFEST)’에서 민요밴드 ‘씽씽’이 공연하고 있다. SORI 제공
“한국의 전통 민요가 글램록, 디스코, 사이키델릭 아트로 깜짝 놀랄 변신을 시도했다. 아주 불경스러우면서도 흥미진진한 이종교배다.”

지난 9일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에 실린 글이다. 전날 뉴욕에서 열린 세계 음악축제 ‘2017 글로벌페스트(globalFEST)’에서 공연한 민요 록밴드 ‘씽씽’을 소개하면서다. 소리꾼 이희문이 검은 망사스타킹에 은빛 가발을 쓰고 ‘정선아리랑’ ‘창부타령’ ‘청춘가’를 불렀다. 밴드에 국악기는 없다. 베이스, 드럼, 일렉트로닉 기타로 연주하는 글램록과 경기 민요의 ‘신선한 만남’에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관객들이 열광했다. 행사에 동행한 예술경영지원센터 시장개발팀 관계자는 “외신 기자들이 씽씽의 공연을 보기 위해 다른 공연을 포기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씽씽은 이 행사에 아시아 단체로는 유일하게 초대받았다.◆포크·블루스 등과의 이종교배

국악계의 재기발랄한 예술가들이 세계무대를 달구고 있다. 다양한 음악 장르와 ‘이종교배’를 시도하면서다. 서양 악기 연주에 맞춰 전통 민요를 부르는가 하면, 해금 거문고 피리 등 국악기로 헤비메탈·블루스·포크를 연주한다. 서구적인 음악 위주인 기존의 K팝을 넘어 전통 민요, 국악이 세계로 뻗어나간다는 면에서 한류가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씽씽의 소리꾼 이희문은 ‘조선의 아이돌’ ‘경기소리의 스타일리스트’ ‘B급 일류 소리꾼’ 등의 별명을 갖고 있다. 연주자들의 실력도 화려하다. 영화 ‘부산행’ ‘곡성’ ‘암살’ 등의 음악감독을 맡았던 장영규가 베이스, 이철희가 드럼, 이태원이 일렉 기타를 잡고, 경기민요 이수자인 이희문과 소리꾼 신승태, 추다혜가 노래를 부른다. 민요와는 어울리지 않는 짙은 화장과 가발, 화려한 의상이 이들의 트레이드 마크다.

3인조 인디 밴드 ‘잠비나이’(사진)는 피리(이일우)·거문고(심은용)·해금(김보미) 연주에 폭발적인 헤비메탈을 접목한 그룹이다. 국악기의 흐름에 일렉 기타와 드럼 소리를 얹어 낯설면서도 친숙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여느 밴드의 화려한 기타 연주 못지않게 거문고를 타는 이들의 손놀림이 화려하다. 2014년부터 1년의 절반가량을 해외 투어로 보낼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국악 밴드 ‘고래야’는 국악과 민요에 록과 포크, 팝과 힙합을 결합해 독특한 음악을 들려준다.

◆소통하는 국악, 해외서도 인기국악 밴드가 크로스오버를 시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현대인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다. 이들 음악이 ‘새로우면서도 익숙한’ 느낌을 주는 이유다. 씽씽의 이희문은 “‘전통 소리’도 대중가요처럼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며 “그래야 노래하는 사람도 흥이 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렉 기타 연주자 이태원은 “지금까지 민요는 한 번도 불러본 적이 없는 ‘지루한 음악’이라는 인식이 강했다”며 “씽씽 공연은 다르다. 록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아까 들은 노래의 가사가 궁금하다며 찾아온다”고 했다. 이희문은 “민요와 글램록이 각자 영역을 지키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녹아든다”며 “두 장르가 ‘연애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영국 일간지 더가디언은 잠비나이의 공연에 대해 “한국의 전통 음악을 21세기로 가져왔다”며 “세 사람의 우아하면서도 에너지 넘치는 퓨전 스타일 소리는 황홀하면서도 예상치 못한, 그러면서도 완벽한 공연”이라고 평가했다. 인디 장르의 미개척지를 보여주는 팀이라는 평가와 함께 지난해 영국의 인디레이블인 벨라유니언과 계약을 맺었다.

이들은 ‘퓨전 국악’이라는 범주에 자신의 음악을 한정 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고래야의 ‘서울포크’ 앨범에 실린 곡 ‘사랑할래요’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우린 늘 얘기해 이건 그냥 가요야/ 아프리카 아랍 혹은 인디아처럼/ 젊은 애들이 자기 나라 음악을/ 좋아해서 갖고 노는/ 그런 날을 상상하고 싶어.”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