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100세 시대와 결혼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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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호 < 조달청장 yhchung@korea.kr >지난해 결혼과 관련해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결혼 30주년인 진주혼식의 해를 맞아 리마인드 결혼식을 한 것, 두 번째는 처음으로 결혼식 주례를 맡은 일이다. 리마인드 결혼식이 결혼생활을 돌아보는 직접적 계기가 됐다면, 주례는 결혼과 관련해 후배들에게까지 훈수를 두는 위치에 와 있다는 점을 일깨워줬다.
흔히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고 한다. 세속적으로 따진다면 누구나 결혼을 통해 덕 좀 보겠다는 마음이 있게 마련인데 두 사람이 동시에 덕을 볼 수는 없는 법이라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래서 결혼과 동시에 후회의 싹이 잉태된다. 법구경의 말을 빌리자면 결혼을 통해 사랑을 키워가든 미움이 생기든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기 마련이다.우리는 결혼식장에서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서로 사랑하고 아끼리라 맹세한다. 그런데 이 맹세의 유효기간은 얼마 동안일까? 과거 평균 수명이 60세일 때에 적합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인생 100세 시대가 되면 결혼하고 70년을 함께 사는데 종전의 결혼 관념을 강요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요즘 젊은이들의 결혼관을 들어보면 기성세대와는 천양지차다.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는 10여년 전에 펴낸 《21세기 사전》에서 이미 일부일처에 근거한 현재의 결혼제도가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2030년이 되면 결혼제도가 사라지고 90%가 동거로 바뀐다는 이야기다. 결혼 풍습에 대해 연구한 미국 인류학자 헬렌 피셔도 “과거 1만년 기간보다 최근 100년간 결혼 관습이 더 많이 변화했다”며 앞으로의 변화가 더욱 극적일 것임을 시사했다.
100세 시대에는 최소한 새로운 부부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새 출발이 필요해 보인다. 결혼생활의 본질은 서로 다름에서 출발해 상생의 협력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결혼생활을 잘하려면 상대에게 덕 보려는 생각보다는 “손해 보는 것이 이익이다”는 마음으로 출발해야 한다. 필자는 리마인드 결혼식을 통해 앞으로 우리 부부가 지켜나가야 할 공통된 삶의 가치, 집안일을 처리하는 원칙을 새로 정리했다. 그리고 상대가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기 이전에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주도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결심했다.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결혼은 사랑의 시작이다. 결혼 30주년을 기념하면서 신혼시절의 초심을 되새겨 본다.
정양호 < 조달청장 yhchung@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