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게그립' 잡은 왕정훈 "퍼팅 고수로 거듭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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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팅 난조로 고생한 왕정훈, 집게그립 갈아타고 승승장구토미 플릿우드, 왕정훈, 필 미켈슨, 이정민….
아부다비 챔피언 플릿우드 "집게그립이 느낌 가장 좋아"
'변형 집게그립 대가' 미켈슨 "단거리 퍼팅 방향성 좋아져"
국적과 성별이 다른 이 프로골퍼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집게그립(혹은 연필그립)을 사용하는 ‘소수파 그리퍼’라는 점이다. 심한 퍼팅 난조로 다양한 퍼팅 그립을 전전하다 현재는 집게그립으로 정착했다는 것도 또 다른 공통분모다. 이들이 미국프로골프(PGA)투어와 유럽프로골프(EPGA)투어 등 주요 투어에서 고른 활약을 펼치자 소수파, 비정상 그립으로 여겨지던 집게그립이 새삼 눈길을 끌고 있다.지난 22일 유럽프로골프(EPGA)투어 아부다비 HSBC챔피언십에서 세계랭킹 3위 더스틴 존슨(미국)을 제치고 4년여 만에 2승 고지에 오른 플릿우드는 2015년 말 집게그립으로 전향했다. 그는 “퍼팅이 너무 안 돼 스윙코치와 함께 안 해본 그립이 없을 정도로 바꾸고 또 바꿨다”며 “집게의 느낌이 제일 좋았고, 이 그립으로 안정감과 자신감을 찾았다”고 털어놨다.
집게그립 덕을 많이 본 프로 중 하나가 ‘골프 노마드’ 왕정훈(22)이다. 지난해 5월 유럽투어 2주 연속 우승 신화를 쓴 그 역시 별별 그립을 다 시도해본 자칭 ‘퍼팅 지진아’였다. 하지만 지난해 초 집게그립으로 갈아탄 뒤 승승장구하고 있다. 왕정훈은 “단거리 퍼팅이 너무 안 돼 바꾼 건데 예상 밖으로 장거리 퍼팅까지 좋아졌다”고 말했다. 왕정훈은 올해 첫 출전한 아부다비 HSBC챔피언십에서 날카로운 퍼팅을 앞세워 단독 11위에 올랐다.
대다수 집게 그리퍼는 연필을 쥐듯 엄지와 검지 사이에 퍼터 그립을 끼운다. 그 다음 오른 손가락을 땅 쪽으로, 손바닥을 홀컵 방향으로 향하게 그립을 쥔다. 왕정훈은 변형 집게그립을 잡는다. 오른 손가락이 홀컵 방향으로, 오른 손바닥이 배꼽을 향하도록 그립을 감싸쥐는 게 다르다. 어깨와 몸통 회전으로 생기는 힘이 팔뚝과 손을 통해 퍼터로 잘 전달돼 동작이 큰 장거리 퍼팅에도 도움이 되는 자세다.
한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를 호령한 이정민(24·비씨카드)도 지난해 시즌 개막전으로 8승을 채운 이후 슬럼프에 빠지자 여자프로로는 드물게 집게그립으로 변화를 모색했다. 그는 “아직은 실험 중이지만 방향성이 많이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집게그립은 주로 방향성이 강조되는 단거리 퍼팅 난조를 교정하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왼손목을 고정하기 쉽고, 퍼터 페이스 각도를 집게 형태로 쥔 손가락으로 섬세하게 통제할 수 있어서다. 플릿우드는 “퍼터 페이스가 임팩트 때 닫히거나 열리는 고질적인 문제를 많이 개선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퍼팅이 갑작스럽게 잘 안 되는 경우 한 번쯤 시도해 볼 만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복합 그립도 나쁘지 않다. 집게와 일반 그립을 오가는 ‘스위치 그립’의 대가가 필 미켈슨(미국)이다. 그는 “그린에 놓여 있는 공의 위치와 거리 등 상황별로 느낌이 좋은 그립 방식을 선택한다”며 “주로 방향을 섬세하게 컨트롤해야 하는 단거리 퍼팅에서 집게그립을 많이 잡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