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설날 표기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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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노! 차이니스 뉴 이어, 예스! 루나 뉴 이어(No! Chinese New Year, Yes! Lunar New Year).” 미주 한인단체들이 요즘 펼치고 있는 캠페인 구호다. 아시아 국가 대부분의 명절인 설날(Lunar New Year)이 중국 설날(Chinese New Year)로 잘못 표기되는 관행을 바로잡자는 것이다.
현지 소식에 따르면 뉴욕한인학부모협회 등은 미국프로농구협회(NBA)와 뉴욕 필하모닉, 뉴저지 버겐카운티 동물원 같은 곳이 홍보문구에 설날을 중국 설날이라고 표기한 데 항의하는 서한을 발송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뉴욕주지사와 뉴욕시장에게도 표기를 바로잡아 줄 것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다.얼마 전 루더잭슨중에서 열린 페스티벌에는 중국뿐만 아니라 인도,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아시안 커뮤니티가 참가했는데도 행사 제목이 ‘중국 설 잔치’였다고 한다. 음력 설의 정확한 표현은 달(月, Lunar)을 바탕으로 하는 ‘Lunar New Year’나 ‘Lunar New Year’s Day’다. 미국 정부기관도 공식적으로 이렇게 표기하고 있다. 세계적인 공연장인 케네디센터처럼 지난해까지 ‘차이니스 뉴 이어’와 ‘루나 뉴 이어’를 병기하다 올해부터 ‘루나 뉴 이어’로 바꾼 곳도 있다.
그러나 많은 영어권 국가가 아직도 ‘중국 설날’을 많이 쓴다. 일찍부터 해외로 나간 화교들이 춘제(春節)를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수출입 업체들이 설날 휴무를 알리는 영문 서류에 ‘중국 설날’이란 표현을 무심코 썼다가 동료·상사로부터 타박 받는 일이 흔하다.
일본은 양력으로 정초를 지내기 때문에 좀 다르지만, 많은 분야에서 국제적인 ‘표기 우위’를 점하고 있다. 바둑만 해도 그렇다. 동양 3국의 바둑이 영어권에서 일본식 이름 ‘고(GO)’로 불리는 것은 2차대전 후 일본이 서양에 바둑을 먼저 보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공지능 바둑기사가 ‘알파고’다. 일본 바둑 용어 ‘아타리(단수, Atari)’는 미국 컴퓨터게임회사 이름이기도 하다.불교 수행법인 선(禪)은 일본식 ‘젠(zen)’, 부채(fan)는 ‘재패니스 펜(Japanese fan)’으로 불린다. 부채새우는 학명 자체가 ‘일본부채새우(Japanese fan lobster)’다. 유도(柔道)도 ‘주도(judo)’다. 우리 김치까지 한때 ‘기무치’로 불렸다. 주변 강국들의 ‘문화 패권’은 갈수록 커지는데, 우리만 집안 싸움으로 허우적대고 있으니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