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의 논점과 관점] 비관론을 먹고 자라는 주가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트럼프 등장 후 글로벌 증시에 훈풍이 불고 있다. 국내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개미들은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트럼프가 당선된 지난해 11월9일부터 올 1월19일까지 개인 순매수액 상위 10개 종목의 평균 수익률은 -9.12%다. 이에 반해 기관 순매수 상위 10개 종목의 평균 수익률은 15.33%, 외국인은 8%였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5.8%, 코스닥은 4.4% 올랐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개미들은 보통 ‘정보 비대칭’ 때문이라고 하소연한다. 기관이나 외국인들은 뭔가 자신들보다 고급 정보를 먼저 입수해 주가가 오르기 전에 매수한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재무이론의 기초인 효율적시장가설(EMH)만 봐도 그 어떤 주체도, 설사 내부 정보를 이용한다고 해도, 일시적으로는 몰라도 지속적으로 초과 수익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개미의 실패' 정보 탓만은 아니다

개미들이 늘 돈을 잃는 이유는 사실 정보 자체보다 정보를 접하는 방식 때문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지 모른다. 주식 초보들은 흔히 “뭐 좀 좋은 주식 없어요?”라고 묻는다. 대박을 터뜨릴 내부 정보를 찾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고급 정보라면 개미에게까지 가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걸 아는 사람이 알려줄 리도 만무하다. 개미가 그나마 증시에서 생존하는 길은 허황된 정보를 찾아 헤매기보다는 시장 주변에 널려진 정보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석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일 수도 있다. 단기 악재나 비관론은 그런 면에서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 악재로 알려진 북한 핵실험을 보자. 1차 핵실험 당일인 2006년 10월9일, 코스피는 2.41% 내렸지만 이후 5거래일 만에 당일 낙폭을 모두 만회하고 장기 상승세를 이어갔다. 이후 5차까지 핵실험 중 한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6거래일 이내에 당일 하락 폭을 회복했다. 주가가 하락세이던 4차(2016년 1월6일) 때만 당일 주가를 상향 돌파하는 데 2개월이 걸렸을 뿐이다.북핵·브렉시트, 모두 투자 기회였다

결과적으로 북한 핵실험은 좋은 투자 기회였던 셈이다. 지난해 6월24일 브렉시트도 마찬가지였다. 당일 주가는 3.09%나 내렸지만 이후 연일 상승, 7거래일 만에 낙폭을 회복했다. 트럼프 당선도 비슷했다. 외국인이나 기관은 이런 이벤트로 낙폭이 커지면 매수에 나서지만 개미들은 공포에 질려 주식을 판다. 요즘 경제 비관론은 어떤가. 각종 경제지표는 사상 최악이며 트럼프의 보호무역으로 올해는 더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론이 사회 전체에 퍼져 있다.

그런데 주가는 지난해 12월 이후 전형적 상승장세를 연출하고 있다. 외국인들은 지난해 12월 이후 3조원 가까운 주식을 쓸어담고 있다. 개미들로선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쏟아지는 경제비관론 사이로 조금만 눈을 돌리면 긍정적 지표도 적잖음을 알 수 있다. 기업 실적이 놀랄 만큼 빠르게 개선되고 있고 설비투자 수출 등 주요 지표가 급속히 호전되고 있다. 지난해 경제가 최악이라고들 떠들었지만 실제 성장률은 2015년보다 높은 2.7%를 기록했다.주가는 원래 비관론을 먹고 오르게 마련이다. 그리고 일반 대중이 주식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비로소 하락 준비를 한다. 요즘 “경제가 그리 나쁘지 않다”고 말하면 미친 사람 취급받기 십상이다. 그런 걸 보니 주가가 더 오를지도 모르겠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