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컨트롤타워론에 속지 마라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 박사
산업화, 국민국가 발전 등과 더불어 등장한 19세기의 발명품 관료제. 규모의 조직을 이끌 효율적 제도라던 그 관료제가 국가마다 골칫거리로 부상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국의 외교관으로 이름을 날린 헨리 키신저는 관료제의 비대함을 근대국가의 악몽으로까지 표현했을 정도다. 최근에는 관료제가 국가 경제 위기의 주범으로 꼽히기도 한다.

천지가 '관제탑' 타령한국은 어떤가. 과거 고도성장을 이끈 동인의 하나로 평가받던 관료제가 효율성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라는 지적이다. 관료제가 갖는 문제에다 정권마다 정부조직을 뜯어고치는 소동을 벌이는데 무슨 효율성이 생기겠나.

어느 정당이 정권을 잡든 정부조직을 또 건드릴 태세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보듯 같은 정당에서 정권을 창출해도 정부조직을 붙였다 떼었다 하는 판국이니 무슨 철학이 있을 리 만무하다. 조직개편 때마다 난무하는 것은 딱 하나. 바로 컨트롤타워 타령이다. 경제 컨트롤타워, 통상 컨트롤타워, 과학기술 컨트롤타워, 정보통신 컨트롤타워, 바이오 컨트롤타워, 신성장동력 컨트롤타워, 미래전략 컨트롤타워, 중소기업 컨트롤타워, 청년정책 컨트롤타워, 저출산·고령화 컨트롤타워, 지역경제 컨트롤타워…. 이걸 다 총족시키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정부조직이 필요한가.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말이 컨트롤타워지 이건 다 또 다른 칸막이나 다름없다. 융·복합이 대세라는 시대에 이 수많은 컨트롤타워 간 어떤 형태로든 겹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다면 겹치는 컨트롤타워를 컨트롤하기 위해 또 다른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논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내각은 형해화하고 모든 권력은 청와대로, 대통령으로 집중될 게 뻔하다. 하지만 그런 컨트롤타워가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져내릴 수 있는지는 지금 눈으로 보고 있는 그대로다.따지고 보면 컨트롤타워론 자체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관료제의 위기를 뜯어고치기는커녕 문제의 관료제를 더 층층으로 강화하자는 것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이건 자율, 창의, 혁신 등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정치권, 정부가 그토록 떠드는 4차 산업혁명 관점에서 봐도 오히려 그 반대여야 맞지 않은가.

새로운 기업·산업을 키우고 싶다면 기업가에게 경제적 자유를 주고, 과학기술을 진흥하겠다면 전문가집단에 자율을 주면 된다. 정치권·정부에서 사회·민간으로의 권력 이동이란 바로 이런 거다. 왜 정권마다 규제개혁이 안 되느냐고 하지만 그 이유도 자명하다. 권력 이동을 수반하지 않는 그 어떤 규제개혁도 언제든 도루묵이 되기 십상이다.

'탈(脫)관료주의'가 답영국 등 선진국이 괜히 ‘탈(脫)관료주의’로 가자고 할 리 없다. 컨트롤타워가 아니라 권력의 위임·분산이 문제의 본질임을 꿰뚫은 결과다. 다음 정권이 경제를 살릴 마음이 있다면, 또 용기가 있다면 정부조직이 아니라 탈관료주의에 승부를 걸라고 말하고 싶다.

실행법은 간단하다. 정부가 시대 변화에 맞춰 무슨 역할을 할지 먼저 분명히 한 다음, 더 이상 쥐고 있을 필요가 없는 권한을 민간이나 전문가집단에 과감하게 이양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반발하는 부처가 있다면 이는 더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명백한 증거이니 폐지가 답이다. 아까운 세금을 뭐하러 낭비하나.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 박사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