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국민이 올바른 선택하는 이성을 보여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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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불가능한 공약 남발하는 후보들대통령의 리더십 부족으로 야기된 정치적 혼돈으로 온 나라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탄핵은 머지않아 헌재에서 마무리되겠지만 어떤 결과가 나와도 갈등과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국민 정서는 이미 법치의 당위성보다 상위에 있고, 자신이 원치 않는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사회적 불신이 너무 깊기 때문이다.
사회적 신뢰 추락, 선진경제 꿈 멀어져
이대로라면 리더십 위기 재연될 수밖에
정갑영 < FROM100 대표 전 연세대 총장 >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손실은 국가의 리더십과 함께 동반 추락한 사회적 신뢰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이미 국가기관과 언론, 사회단체, 개인 상호 간의 신뢰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가장 낮은 수준이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헤어나오기 힘든 심연(深淵)으로 빠져버린 것 같다.진실은 ‘A’인데 언론이 ‘알파’를 더하고, 정치권에서 ‘베타’를 추가한 뒤, 사회관계망(SNS)에서는 ‘감마’를 합산해 무책임하게 유통시키는 현실에서 어느 누가 A를 믿겠는가. 정론을 표방하던 대표적 매체들도 ‘알파’의 유혹에 흔들리고, 과학적 진리마저 ‘감마’로 각색돼 둔갑하니, 어떻게 사회적 신뢰가 무너지지 않겠는가. ‘광우병 사태’나 ‘세월호의 진실’ 논란도 모두 이런 불신의 늪에서 비롯된 것 아니겠는가.
더 큰 문제는 국가 리더십에 대한 신뢰의 위기가 차기 대선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의 미래를 책임지겠다고 나선 대권 후보들마저 바른 정책보다는 지속 불가능한 ‘당근’에만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를 위한 전략보다는 당선을 위한 당근 개발에만 열중하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우리 정치의 슬픈 현실이라면 선진경제의 꿈은 한동안 접어야 할 것 같다. 누가 선거에서 이긴다 해도 그런 공약은 지속 가능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 경제의 잠재력만 더 훼손할 것이다. 처음부터 불신과 회의를 가득 안고 출발하는 후보가 어떻게 사회적 신뢰를 확보할 수 있겠는가. 결국은 국가 리더십에 대한 신뢰의 위기가 재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경제는 이미 내부 생태계가 크게 훼손됐다. 지속되는 경기 침체 속에 양극화와 갈등이 심각하고 노동과 교육, 규제 개혁 등은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미래 성장동력도, 투자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전략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와중에 어디서 그 많은 돈이 나오며 누가 일자리를 창출하고 어떻게 해고 없는 구조조정을 이룰 수 있겠는가. 온 나라가 표(票)밭에 뿌려지는 숱한 당근으로 ‘지속 불가능한 발전’의 허상에 오염돼 있다.경제가 성장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데 아무도 성장을 위한 혁신과 고통은 말하지 않는다. 미래를 위한 혁신과 고통을 호소하며 국민을 설득하는 후보자를 찾아볼 수 없다. 이대로 간다면 솔깃한 정책은 결국 하루살이 공약(空約)이 되거나 일시적인 한풀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경제에는 항상 공짜 점심이 없다. 아픔을 감당하며 과감한 혁신이 있어야만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 혁신(革新)의 의미가 가죽을 벗겨내는 것 아닌가. 우리 경제는 지금 규제시스템을 과감히 혁신하고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성장산업이 융성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구조개혁이 절실하다. 이런 대전환기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신뢰받는 리더십이 있어야만 미래를 열어줄 지속 가능한 발전을 꿈꿀 수 있다. 그러나 대권 후보들은 솔깃한 인기 전술에만 집착하고 국민은 2만달러를 넘긴 작은 풍요에 안주해 다가올 미래의 도전을 모두 잊고 살아가는 것 같다.
어느 조직에서나 리더십의 위기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 리더십 위기는 이번 한 번으로 족하다. 더 이상 이런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대선 주자들부터 신뢰받는 리더십의 표상을 보여줘야 한다. 나아가 지식인, 언론, 사회 지도층이 모두 한국의 미래를 조명하는 담론을 이끌어내야 하고 그 지평에서 신뢰받는 리더십을 거론해야 한다. 국민도 이제는 합리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격조 있는 이성(理性)을 보여줘야 한다. 감정과 인기에 영합해 지도자를 선택하면 리더십 위기는 반드시 재연될 수밖에 없다.
정갑영 < FROM100 대표 전 연세대 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