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언각비] 구제역, 그 낯섦에 대하여

홍성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100년 전 이 땅에는 해마다 전염병이 돌아 하루에도 여러 명이 죽어나갔다. 1924년 경기도 위생과는 과거 10년간 관내 전염병 발생 현황을 조사해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2만1928명의 환자가 발생해 7031명이 사망한 것으로 당시 신문은 전하고 있다. 그중에서 ‘장질부사(腸窒扶斯)’ 환자가 가장 많아 5742명이 발생해 1244명이 사망했다. 치사율이 20%가 넘는 무서운 병이었다.

장질부사란 예전에 장티푸스(腸typhus)를 가리키던 말이다. 지금은 외래어를 한글로 옮기지만 과거에는 한자음을 빌려 썼다. 역병(疫病)은 집단적으로 생기는 급성전염병을 이른다. ‘역(疫)’이 들어간 말은 돌림병을 뜻한다. 홍역(紅疫)을 비롯해 두역(痘疫천연두), 서역(鼠疫페스트), 호역(虎疫콜레라)이라고도 했다.역병을 좀 더 일상적으로 말한 게 염병(染病)이다. 염병은 두 가지로 쓰인다. 하나는 글자 그대로 전염병을 뜻한다. 다른 하나는 장티푸스를 가리킨다. 의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 장티푸스는 걸리면 손도 써보지 못할 치명적 질병이었다. 그래서 장티푸스가 염병의 대명사가 됐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염병을 떨다’(엉뚱하거나 나쁜 짓을 하다)란 관용구가 생겼을까. “염병할!”이라고 하면 욕인데, ‘장티푸스를 앓다 죽을’이란 속뜻을 담고 있다. 이 말이 사전에 오른 데는 그런 까닭이 있다.

구제역(口蹄疫)이 7년 만에 다시 발생해 축산농가에 비상이 걸렸다. 구제역은 소나 돼지 등이 걸리는 전염병이다. 옛날 신문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1933년 평안북도에서 처음 창궐해 한우값이 폭등하는 등 큰 피해를 줬다. 오래전부터 쓰던 말이지만 여전히 낯설고 어렵다. ‘입 구, 발굽 제, 돌림병 역’은 영어의 ‘foot-and-mouth disease’를 직역한 것이다. 일본 용어를 그대로 가져다 써서 굳어버린 경우다(황건 전 대한의사협회 의학용어위원장). 의사협회는 2001년 구제역 대신 ‘입발굽병’을 권장용어로 제시했다.

구제역과 함께 붙어다니는 말이 ‘우제류(偶蹄類)’다. ‘짝 우, 발굽 제’로, 소 돼지 사슴 등 발굽이 2개로 갈라져 있는 짐승의 무리를 뜻한다. 말처럼 발굽이 하나, 즉 홀수인 것은 기제류(奇蹄類)라 한다. 모두 적응하기 쉽지 않은 말들이다. 우제류를 짝발굽동물, 기제류를 외발굽동물이라 바꿔 쓴 사례가 더러 있다. 이런 쉬운 말도 쓰지 않으면 사라져갈 뿐이다.

홍성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