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내가 누군 줄 아느냐"…갑질 고객의 반복되는 기사 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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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접수만 매년 3000여건서울에서 영업하는 택시기사 강모씨(55)는 얼마 전 새벽에 만취한 승객에게 봉변을 당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뒤 자고 있는 손님을 흔들어 깨워 “요금을 달라”고 했다가 다짜고짜 멱살을 잡혔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 지금 나를 무시하냐” 등 온갖 욕설을 들어야 했다. 경찰에 신고한 다음날 승객한테 연락이 왔다. 승객은 “정말 미안하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서 선처를 부탁했다.
대형사고로 번질 수 있어…일시 정차때도 가중 처벌 받아
A씨는 “비슷한 일을 워낙 많이 겪다 보니 이골이 난다”며 “웬만하면 합의해주지만 정말 이건 아니지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고 말했다.택시기사 폭행 사건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사건 유형이다. 17일 홍일표 바른정당 의원실에 따르면 경찰의 운전자(버스·택시) 폭행 입건 건수는 2013년 3271건에 이어 2014년 3243건, 2015년 3111건 등 매년 3000건 이상 발생했다.
매일 8~9건씩 운전자 폭행 사건이 경찰서에 접수되는 셈이다. 실제로는 더 많은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관계자는 “손님과 폭행 시비에 엮여 경찰서에 가면 그날 영업을 망치게 된다”며 “하루 회사에 내야 할 사납금을 생각해 어지간한 폭행 건은 그냥 넘어가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택시 안에도 주취자 폭력이 심각하다. 지난해 8월 술에 취한 서울 은평구청의 한 공무원은 “택시요금이 너무 많이 나왔다”며 택시기사의 목을 조르고 머리를 때렸다가 경찰에 입건됐다. 김모씨(50)는 “주로 서울 강남·홍대 등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유흥지에서 탄 취객이 행패를 부리는 경우가 많다”며 “손님이 많은 곳이지만 나이든 기사들은 봉변을 당할까봐 잘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서울 일선 경찰서의 한 지구대장은 “휴일을 앞두고 택시 폭행 사건이 잦다”며 “휴대폰 충전을 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사 뒤통수를 때려 조사받은 취객도 있었다”고 말했다.
택시기사 폭행은 자칫 대형 사고로 번질 수 있어 위험성이 크다. 지난해 10월 서울 당산역 부근에서 발생한 연쇄 추돌사고도 택시기사 폭행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만취한 채 택시를 탄 이모씨(48)는 ‘느리게 간다’는 이유로 택시기사 조모씨(59)의 뺨과 머리를 때렸다. 이를 피하려던 조씨가 앞차를 들이받으면서 5중 추돌사고가 났고 8명이 다쳤다.
대중교통 운전자를 폭행하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에 따라 일반 폭행죄보다 가중처벌(5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된다. 특가법은 2015년 ‘운행 중’뿐 아니라 ‘여객의 승·하차 등을 위해 일시 정차한 경우’에도 운전자 폭행자를 가중 처벌할 수 있도록 개정됐다.취객과 실랑이 끝에 택시기사가 폭행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목숨을 잃는 끔찍한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달 경기 안산시에선 취객을 폭행하고 도로에 버려 사고로 숨지게 한 혐의로 택시기사 이모씨(43)가 입건됐다. 경찰 조사에서 이씨는 “만취한 승객이 택시 안에서 소란을 피우고 택시비가 없다고 해 화가 나서 폭행했다”고 진술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