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수목원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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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바람끝이 맵지만 햇살은 벌써 봄이다. 우수(雨水) 지난 들판에 노루귀가 솟았다. 변산바람꽃과 명자꽃도 피었다. 보송보송한 갯버들의 솜털이 앙증스럽다. 올해는 봄꽃 피는 시기가 며칠 앞당겨졌다. 꽃샘추위가 남았지만 2~3월 기온이 평년보다 높아 꽃마중도 빨라질 모양이다.
눈을 뚫고 피는 복수초는 서울까지 올라왔다. 복수초는 복(福)과 장수(長壽), 부와 행복을 상징하는 봄꽃의 대명사다. 눈과 얼음 사이를 뚫고 핀다 해서 ‘얼음새꽃’ ‘눈새기꽃’으로도 불린다. 꽃잎을 둥글게 펼치고 집광판처럼 빛을 모으며 제 몸의 온도를 높이기 때문에 주변의 눈을 녹인다. 가는 털로 온몸을 감싸는 노루귀와 스스로 열을 방출하는 앉은부채도 일찍 꽃을 피우는 ‘봄의 전령사’다.제주한라수목원을 비롯한 전국의 수목원은 봄꽃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명소다. 전남 완도수목원에도 벌써 봄소식이 당도했다. 국내 최대 난대림(暖帶林) 자생지인 이곳에서는 분홍 애기동백을 비롯해 개나리, 수선화, 목련 등이 4월까지 지천으로 핀다. 순천 미림수목원과 진주 경남수목원, 부산 화명수목원·금강수목원 등 남해안 일대의 수목원도 한창 물이 올랐다.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과 청산수목원, 공주 금강수목원 등 서해안 지역에도 봄빛이 완연하다. 해양성 기후로 겨울에도 추위가 덜하고 따뜻한 봄바람이 일찍 부는 환경 덕분이다. 오후 3시쯤 활짝 피었다 해가 저물면 잎을 오므리는 복수초, 혹한에서도 탈 없이 견디는 설강화 등 봄맞이 향연을 즐길 수 있다. 조금 있으면 600여종의 목련이 잇달아 핀다. 최근엔 노약자나 유모차,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무장애탐방로 ‘다함께 나눔길’이 완공됐다. 꽃길과 바다, 숲과 노을을 한꺼번에 감상하기에 좋다.
산림청에 등록된 국·공·사립수목원은 광릉·홍릉 등 전국 51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부산화명수목원, 대구수목원, 한라수목원, 인천수목원, 황학산수목원, 부천무릉도원수목원, 한밭수목원, 강릉솔향수목원, 경북수목원 등 13곳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사립인 아침고요수목원(가평)의 봄꽃축제도 화려하다.야생화 이름을 몰라도 문제 없다. 내달부터 희귀한 야생화를 스마트폰으로 찍어 검색하면 인공지능(AI)이 해결해준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카카오와 손잡고 펼치는 꽃검색 서비스다. 기초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집단지성을 활용한 정보까지 찾아 알려준다. 이젠 ‘이름 모를 꽃’이라는 낡은 표현도 없어질 것 같다. 이번 주부터 들로 산으로 봄마중을 나서보자.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