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준 신임 서울시립미술관장 "학문·장르 경계 넘는 테마전 자주 열 것"

경영마인드 갖춘 MBA 출신
민간과 협력을 주요 운영 가치로
"서울 곳곳을 예술명소로 개발"
“서울시립미술관은 비영리기관일 뿐 비경쟁 기관은 아닙니다. 시민들이 미술관 대신 누릴 수 있는 문화예술 서비스는 뭐가 있는지 경쟁 콘텐츠를 철저히 분석해 거기에 맞게 프로그램을 마련하겠습니다.”

최효준 신임 서울시립미술관장(65·사진)은 20일 서울 서소문동 미술관 본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 9일 임기 2년의 관장에 취임했다. 최 관장은 “서울시립미술관은 관(官) 조직이기 때문에 창의성을 극대화하려면 민간 부문과 협력하는 게 필수적”이라며 “민간과 긴밀하게 협력하는 거버넌스(협치)를 실현하는 걸 박물관 운영의 주요 과제로 삼겠다”고 말했다. 또 “미술관이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더 많은 시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대중성을 주요 운영 가치로 삼겠다”며 “시민들이 미술관에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채널을 많이 마련해 끊임없이 소통하겠다”고 덧붙였다.최 관장은 예술계 인사로는 드물게 경영 마인드를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이력을 보면 왜 그런지 이해가 간다. 최 관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미시간주립대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쳤다. 졸업 직후 금성(현 LG) 미국법인에 취직해 1984년부터 5년간 일했다. 최 관장은 “학창시절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는데 뉴욕생활 당시 주변에 화랑이 많아 자주 교류했다”며 “나중에는 직업을 바꿔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사무실과 집 등에 미술품을 설치·관리하는 아트컨설턴트로 일했다”고 설명했다. 귀국해서는 삼성문화재단 수석연구원, 서울시립미술관 전시과장, 전북도립미술관장, 경기도미술관장 등을 지냈다.

“유명 작가 작품을 한꺼번에 들여와서 맥락 없이 여는 ‘블록버스터 전시’는 가급적 자제할 방침입니다. 미술관이 기획 기능 없이 단순히 대관 공간에 머물러서는 곤란하거든요. 자체 기획 역량을 강화해서 시대와 학문, 장르의 경계를 넘어서는 테마전을 자주 열 계획입니다.”

그는 박물관과 박물관이 아닌 곳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에코뮤지엄’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독일에서는 폐광을 미술관으로 개조하는 등 에코뮤지엄 사례가 많죠. 국내에선 우리은행 동대문지점 외벽에 오윤 작가의 테라코타 부조 벽화가 있지만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습니다. 서울 곳곳의 예술 포인트를 명소로 만들 생각입니다.”이날 간담회에서는 서울시립미술관의 올해 전시 계획도 공개됐다. 시각 디자이너 안상수를 재조명하는 ‘날개, 파티’(3월), ‘덕후’(한 가지 분야에 몰두하는 사람)를 화두로 한 ‘덕후 프로젝트’(4월), 김차섭과 전소정 작가가 참여하는 ‘김차섭 vs 전소정’(7월) 등의 다양한 기획전이 예정돼 있다.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 컬렉션 전(5월)과 영국문화원 컬렉션 전(9월), 라틴아메리카 미술전(12월) 등 해외 교류전도 마련한다.

최 관장은 “요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데 미술관이 이런 상황에서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겠다”며 “아름다움으로 마음의 위안을 주는 순수미술과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사회적 미술이라는 양 날개를 모두 추구하겠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