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화 5년' 위기의 서울대] 창업 꿈꾸는 학생을 '희귀동물' 취급…'혁신 DNA' 사라진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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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밥통'에 갇힌 서울대…천재·괴짜가 없다‘혁신 DNA가 사라졌다.’ 서울대의 현주소에 대한 교육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창업하겠다는 학생은 ‘희귀동물’ 취급을 받는다. 창업가 계보는 1990년대 이해진(네이버), 김범수(다음카카오), 김택진(엔씨소프트) ‘트리오’ 이후 끊긴 지 오래다. 기업 취직을 원하는 이들 중 절반은 공기업을 희망한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국어국문학과 52학번) 등 옛 선배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개성 있는 천재와 괴짜들의 공간”은 자취를 감췄다.
안정적 직업 선호도 높아
25% "공무원·법조인 희망"…"창업하겠다" 3.4% 불과
국회 "왜 창업 안하나" 질타
대학 개혁은 '지지부진'
평균 연봉 1억 넘는 교수들, 72% "급여 수준 불만족"
성과제 꺼리며 혁신 '뒷전'
◆창업 안 하는 서울대생서울대 본부 관계자들은 21일 김세연 바른정당 의원의 호출을 받고 여의도 국회의원실을 찾았다. ‘서울대생은 왜 창업을 기피하나’란 의원실 질의에 답변하기 위해서였다. 서울대 관계자는 “창업하려면 휴학해야 하는데 이에 관한 교육부 지침 등이 현실과 맞지 않는 다는 점을 설명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대의 ‘혁신 실종’을 제도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지난해 4월 나온 ‘서울대 학부생 진로의식 조사 결과보고’는 이에 대한 답을 보여준다.
본지가 전문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서울대생은 ‘괴짜’와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응답자 중 창업을 희망한 학생은 3.4%에 불과했다. 공무원, 의사, 법률인, 교사 등 안정적인 직업을 택하겠다는 비율이 24.7%에 달했다. 대학원 진학 및 유학(39.5%)으로 취업을 미룬 이들을 빼면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다. 기업 취직으로 진로를 설계한 학생은 26.1%였는데 그중 43.9%는 공기업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을 진행한 서울대 관계자는 “인문계생은 절반 이상이 고시(高試)나 ‘공시(公試)’를 준비하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금융·법경제학 분야를 다루는 경제학부 동아리들이 ‘특수’라고 할 만큼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도 서울대의 씁쓸한 단면을 보여준다. 한국은행 등 공공기관이나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진학에 도움이 된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경제학부 졸업생인 A씨는 “예전엔 경제학자를 꿈꾸는 박사지망생들 동아리가 요즘은 ‘금공(금융공기업) 등용문’으로 전락했다”고 아쉬워했다.◆경쟁 싫어하는 교수 사회
대학도 혁신에 둔감하다. 2011년 법인화로 예산 독립권까지 줬지만 글로벌 대학평가기관이 발표하는 순위에서 매년 떨어지는 등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인화된 지 만 5년이 지난 최근에야 자체 보수규정을 만들었을 정도다. 그나마도 지난해 5월 감사원으로부터 ‘법적 근거 없이 교수들에게 연구지원금을 지급했다’는 지적을 받고 나서 이뤄진 조치다.교수들 역시 ‘철밥통’을 고집하고 있다. 서울대 교수협의회 설문 조사에 따르면 전체 교수의 72%가 급여 수준(지난해 평균 연봉 1억600만원)이 불만이라면서도 성과연봉제를 원하는 이들은 18%에 불과했다. 서울대 내부에서조차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김성근 자연대 학장은 중국 베이징대와의 경쟁력 격차를 예로 들었다. 그는 “베이징대, 칭화대에 가서 가장 놀란 것 중 하나는 철저하게 성과를 중시한다는 점이었다”며 “실적에 따라 교수 간 연봉이 서너 배씩 차이가 나기도 한다”고 했다.
정규직 1066명, 비정규직이 2000여명인 교직원에 대한 개혁도 지지부진하다. 서울대는 2015년 외부 컨설팅을 통해 전체 인력 중 10~16%를 감축할 여지가 있다는 진단을 내리기도 했다.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연간 출연금 4400억원 중 3000억원가량이 인건비에 들어가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법인화 이전과 비교해 서울대가 어떤 개혁을 했는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황정환/박동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