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네버다이'…작전명 : 기술 플랫폼, 코드명 :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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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은 국내 정보기술(IT)업계에서 ‘은둔의 경영자’로 불릴 만큼 대외 활동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만큼은 달랐다. 하반기에만 세 차례나 공개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시종일관 특유의 수줍은 미소를 띤 채 회사의 비전과 자신의 사명에 대해 가감 없이 털어놨다.
'은둔의 경영자' 이해진의 고민
지난해 매출 4조·이익 1조…자회사 라인, 미·일 동시 상장
최고의 한해 보냈지만 "잠 못이뤄"
구글·페이스북과 경쟁, 살아남을까
미·중 아닌 유럽 먼저 공략, 펀드 조성해 현지 스타트업 투자
창의 인재·미래기술 확보 박차
5년간 기술·콘텐츠에 5000억 투자
인공지능·자율주행·음성인식 집중
IT업계 관계자는 “이 의장은 스스로 회사의 중대 분기점이라고 판단할 때면 공식 석상에 나오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며 “그만큼 지금 네이버가 향후 10년을 판가름할 기로에 서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네이버는 지난해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국내 인터넷 기업 최초로 지난해 연 매출 4조원, 영업이익 1조원 벽을 뚫었다. 3분기부터 분기 매출만 1조원을 넘어섰다. 일본 자회사 라인은 작년 7월 일본 도쿄와 미국 뉴욕증시에 동시 상장했으며 스노우(동영상 채팅 앱) 브이라이브(실시간 동영상 생중계 앱) 등 ‘제2의 라인’으로 성장할 글로벌 서비스도 착실히 키워내고 있다.
이 의장은 이 같은 성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매년 고통스럽다”며 절박한 심경을 호소했다. 이 의장은 지난해 7월 강원 춘천에서 라인 상장을 기념해 연 기자간담회에서 “네이버로서는 이제 또 위기고 새로운 시작”이라며 “구글 유튜브에 동영상을 뺏기고, 인스타그램에는 사진을 뺏기고, 페이스북한테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다 빼앗긴 상태에서 계속 경쟁력을 가져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인터넷 기업 중에는 미국 중국 회사 외에 살아남은 곳이 없다”며 “네이버와 라인이 과연 구글 페이스북 등을 상대로 한 버거운 경쟁에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지 밤잠 못자고 고민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 의장은 이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내놨다. 미국과 중국이 아니라 유럽을 우선 공략하는 전략을 세웠다. 그는 지난해 9월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프랑스계 벤처캐피털(VC)인 코렐리아캐피털과 함께 총 1억유로(약 1234억원) 규모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투자 펀드인 ‘K펀드1’을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네이버와 라인이 5000만유로씩 출자한 이 펀드는 한국계 입양아 출신으로 프랑스 디지털경제부 장관을 지낸 플뢰르 펠르랭 대표가 운용을 맡았다.이 의장은 “코렐리아를 통해 유럽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 과정에서 기회를 찾아보겠다”며 “네이버가 일본에 처음 진출한 지 거의 10년 만에 성과(라인의 성공)를 낸 것처럼 유럽에서도 짧은 시간 내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어 “국내에서도 D2스타트업팩토리 등을 통해 기술 스타트업에 주로 투자하고 있다”며 “그런 기술력을 갖춘 유럽 인재들이 지금은 대부분 고연봉을 주는 미국으로 가지만 앞으로는 이들이 현지에서 회사를 설립해 아시아와 교류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 의장은 자체적으로 미래 기술을 개발·확보하기 위한 투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그는 지난해 10월 네이버랩스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연 ‘데뷰(DEVIEW) 2016’ 행사에서 “과거 인터넷과 모바일 시대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서비스를 내세운 기업들이 힘을 얻었다면 앞으로는 인공지능(AI) 데이터분석 등의 기술이 실생활에 들어오면서 기술 경쟁이 한층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네이버도 회사를 창업한 이후 지금까지 인력의 절반 이상은 기술자로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지켜 왔다”며 “라인 상장도 본격적으로 해외 기술에 투자하기 위한 자금 조달의 목적이 컸다”고 말했다.
네이버는 기술 플랫폼으로의 진화를 위해 향후 5년간 기술과 콘텐츠 분야에 5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AI 로보틱스 자율주행 음성인식 번역기술 등을 꼽았다. 네이버와 라인이 함께 진행 중인 AI 연구개발 프로젝트 ‘J’도 점차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네이버와 라인은 올 상반기 AI 스피커 출시를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오는 3월 대표로 취임하는 한성숙 서비스총괄 부사장은 최근 한 강연에서 “로봇 기술을 일상생활 속에서 선보인 것은 많은 기업들이 연구에 매달린 휴머노이드가 아니라 로봇청소기였다”며 “네이버가 추구하는 것도 첨단기술을 일상으로 끌어들여 모두가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대중화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