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유학 안가고 실력으로 승부했죠"…대전토박이 대학생 디자이너 이야기

한남대생 김완기씨, 세계적 디자인어워드 휩쓸어
김완기 Eyedea LAB 대표(한남대 4학년)
[ 조아라 기자 ] "대학생들은 아무래도 취업에 관심이 많잖아요. 보통 학벌, 언어능력, 경력을 중요하게 보는데요. 지방대 출신이다 보니 세 가지 가운데 '경력'에 주력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열심히 공모전을 준비한 이유죠."

지난달 27일 대전에서 만난 한남대 디자인학과 4학년 김완기 씨(25·사진)는 열정이 넘쳤다. 불과 2년 남짓 기간 동안 국내외 공모전에서 25개의 상을 거머쥐었다. 환경을 탓하기보다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그는 2015~2016년 세계적 권위의 독일 레드닷(Red dot) 디자인 어워드에서 두 차례 입상한데 이어 지난해 미국 IDEA(International Design Excellence Awards)에서도 수상했다.

이들 공모전은 독일의 iF디자인(International forum Design)과 더불어 세계 3대 디자인 공모전으로 꼽힌다.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는 전세계에서 매년 6000여 개의 작품이 몰리는데 수상작으로는 200개 작품이 뽑힌다. 특히 IDEA 공모전의 경우 삼성, 애플, 캐논 등 유명 글로벌기업들도 참여해 아마추어 수준의 개인이 입상하기는 쉽지 않다.

김 씨가 디자인한 캔들워머는 불이 아닌 전구의 열로 향초를 녹여 사용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기존 향초보다 안전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 향초 안에 장난감을 숨겨놓아 오락성까지 더해 호평을 받았다. 또 다른 수상작인 거품기는 사용하지 않을 때는 새장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으로 심사진 눈길을 끌었다. 양념통 역시 꽃병과 비슷하게 디자인해 기능성에 심미성을 더했다.그는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올해 초 개인 브랜드 '아이디어 랩(Eyedea LAB)'을 론칭해 디자이너로써의 본격 행보에 나섰다.

김 씨의 입상작들은 반응이 좋아 제품화로 이어졌다. 거품기는 네덜란드의 한 회사에서 다음달 공식 판매되며 프랑스 기업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캔들워머도 일본 기업과 계약 조율 중이다. 양념통은 올해 중국에서 열리는 칸톤페어(CANTON FAIR)에 전시해 새로운 바이어를 찾을 계획이다.
캔들워머와 거품기. 캔들워머는 전구의 열이 초를 녹이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초 안에 장난감이 숨겨져 있다. 거품기는 새장 모양을 본따 만들었다. 유럽에서 반응이 좋다는 설명.
그는 "디자인 계약으로 벌어들인 수익과 기존에 모아놓은 돈을 개인 브랜드에 투자할 계획이다. 디자인한 제품들이 이용자들에게 사랑받으면서 널리 쓰였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김 씨가 디자인 공모전에서 가능성을 본 것은 대학 1학년을 마칠 무렵. 세계적 가전업체 일렉트로룩스가 주최한 공모전 1라운드에 합격했다. 하지만 입대를 앞두고 있어 2라운드에는 불참할 수밖에 없었다. 우승하면 인턴십 기회도 주어졌기 때문에 더욱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열정을 쏟아붓는 계기로 삼았다. 김 씨는 "입대했지만 환경이나 제약 조건에 연연하지 않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군생활 하면서도 틈틈이 스케치하고 아이디어를 메모했다"고 귀띔했다. 그 결과 군 복무 중에 스파크(SPARK) 디자인 어워드에서 입상하기도 했다.

제대 후에는 '코리아 디자인 멤버십'에 지원해 선정됐다. 이 프로그램은 미래 스타디자이너 발굴을 취지로 대학생들에 산학협력, 해외 디자인워크숍 참가 등의 다양한 교육기회를 제공했다. 김 씨도 프로그램을 통해 공모전 참가비 등을 지원받고 응모해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공모전 참가 당시 만난 세계적 디자이너 로산나 올란디가 제가 디자인한 제품들을 '우아하고 세련된 디자인'이라고 평가했을 때는 정말 기뻤습니다."

그가 국제 공모전에서 연달아 수상하자 학과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학교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인사가 됐다. 조언을 구하는 동기와 후배들이 줄을 이었다. 그는 공모전 준비 동아리를 만들어 후배들을 이끌고 있다.

김 씨는 대전에서 나고 자라 대학까지 이곳에서 다니고 있는 '대전 토박이'다. 눈에 띄는 성과를 내자 학과 교수들은 그에게 유학을 권했다. 하지만 김 씨는 고향을 떠날 생각이 없다고 했다."학생들이 지방대라는 이유로 위축되는 면이 있어요. 이건 '독'이라고 생각합니다. 후배들에게 '꿈은 크게 갖되 자기 자신은 절대 낮추지 말자'고 얘기하고 있어요. 자기 자신의 역량을 믿고 용기 있게 도전하는 자세가 중요하니까요."
양념통은 통 밖으로 숟가락 손잡이 부분을 길게 빼서 마치 꽃을 한 송이씩 꽂은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중국 칸톤페어에 전시할 예정이다.
대전=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사진=Eyedea LAB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