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로맨틱 가도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해마다 2500여만명이 몰리는 독일 관광 명소 로맨틱 가도. 독일 중남부를 관통하는 350㎞의 대로 옆으로 유서깊은 도시들이 잇닿아 있다. 이 길을 찾는 사람 중 하룻밤 이상 자고 가는 숙박관광객만 연 500만명에 이른다. 로맨틱 가도라는 이름이 생긴 것은 약 70년 전인 1950년이다. 로마로 가는 옛길을 로만티셰 슈트라세(Romantische Strasse)라고 부르면서 낭만적인 감성까지 입힌 중의적 명명이다. 이제는 자동차뿐 아니라 자전거도로와 보행로까지 생겼다.

다른 나라에도 아름다운 길이 많다. 이탈리아 남부의 아말피 해안도로, 호주 빅토리아 해변의 그레이트 오션 로드 등은 이름만으로도 설레게 한다. 캐나다 북부 케이프 브래튼 섬의 캐벗 트레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이탈리아 스텔비오 패스까지 이어지는 산간도로, 뉴질랜드 남알프스를 통과하는 밀포드 로드, 일본 도치기현 닛코의 산간도로 이로하자카 등도 세계적인 드라이브 명소다.한국에도 로맨틱 가도를 벤치마킹한 낭만가도가 있다. 7번 국도의 강원 고성과 삼척을 잇는 240㎞ 구간이다. 인근의 진부령 고갯길을 비롯해 금강 물줄기 따라 펼쳐지는 37번 국도, 안면송 솔향이 그윽한 태안 77번 국도, 섬진강 물길과 옛 전라선 철길 사이로 달리는 17번 국도 역시 인기 코스다. 전남 영광 백수해안도로, 경남 남해 다랭이마을 부근의 남면해안도로, 경남 거제 해금강해안도로, 전남 진도 세방낙조 해안도로 또한 손꼽히는 길이다.

그러나 섬이 많은 남해안 지역은 교통망이 툭툭 끊겨 아쉬움이 많다. 거제 통영을 거쳐 남해까지 갔다가 앞에 뻔히 보이는 여수는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 엊그제 국토부가 내놓은 남해안 8개 시·군 연계 관광 계획은 그런 점에서 참으로 반갑다. 경남 거제에서 전남 고흥까지 남해안 해안도로 483㎞를 드라이브 코스로 연결하는 ‘쪽빛너울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빠르면 하반기부터 바지선과 크루즈까지 띄워 1300여개 섬에서 주제별 체험을 즐길 수 있도록 할 모양이다. 피오르 지역 18개 경관을 묶은 노르웨이 국립관광도로와 독일 로맨틱 가도의 장점을 접목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길 자체가 최종 목적은 아니다. 길은 다양한 관광자원을 연결하는 루트다. 로맨틱 가도도 27개 지방자치단체가 도시를 활성화하기 위한 협력 과정에서 탄생했다. 공동의 브랜드를 갖고 각 도시의 장점을 살리는 광역 관광마케팅에 성공한 덕분이다. 이왕이면 이런 운영 방식까지 들여와 잘 활용하는 게 좋겠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