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은 지금 시위꾼만 가득"…"탄핵해도 나라 안 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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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둘로 쪼개진 광장…태극기가 본 촛불 VS 촛불이 본 태극기양쪽 다 손에는 태극기를 들었지만 입으로는 정반대의 구호를 외쳤다. 촛불·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은 청와대와 헌법재판소 쪽을 향해 “탄핵인용”과 “탄핵기각”이라는 함성을 질렀다. 98주년 3·1절인 1일 서울 광화문과 시청 앞 광장에서다. 경찰 차벽을 가운데 놓고 대치한 양측은 대규모 세 대결을 벌였다. 상대편에 대한 ‘오해와 불신’은 차벽보다 훨씬 크고 견고했다. 일부 참가자는 “상대편 진영을 차지하겠다”며 차벽을 넘다 경찰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양측 집회 참가자들에게 상대방을 보는 시각을 물어봤다.
태극기 집회 처음 나온 20대
"탄핵 기각 원하는 젊은이도 많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촛불 집회 참석한 60대
"오래 살았다고 탄핵에 다 반대하는 거 아니다"
“촛불은 민심의 극히 일부분”‘태극기 집회’ 주최 측은 이날 2시부터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집회에 500만명이 모였다고 주장했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은 예고한 대로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했지만 우려한 충돌 없이 오후 6시께 해산했다.
한모씨(69·서울)는 지난 1월7일 강남구 삼성동에서 열린 8차 태극기집회 이후 매주 나오고 있다고 했다. 한씨는 “촛불집회에 나온 사람들도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은 똑같을 것”이라며 “다만 지금 촛불집회엔 일반 시민은 별로 없고 ‘이석기 석방’ 등을 외치는 시위꾼들만 가득한 것 같다”고 했다. 이어 “대통령이 잘못한 게 있어 파면(탄핵 인용)으로 결론이 나면 승복해야 하겠지만 좌파에 나라가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태극기집회가 일부 과격한 사람들로 인해 욕을 먹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한씨는 “‘아스팔트가 피로 물들 것’이라는 식의 과격한 발언이나 경찰 차벽을 넘어가려는 돌발 행동은 집회의 명분을 약화시키고 모두를 욕먹게 하는 짓”이라며 “국민들이 서로 싸우고 돌 던지는 폭력사태가 발생하면 북한만 좋은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취업 준비생 박성훈 씨(27)는 이날 태극기집회에 처음 나왔다. 그는 “헌법재판소를 압박하려는 것은 아니고 탄핵 기각을 요구하는 젊은 사람도 많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참가했다”며 “촛불집회는 민심의 극히 일부이고, 상당수 국민은 탄핵을 반대하고 있다”고 했다.
주부 장모씨(40·경기 안양)는 “대통령이 세월호 사태 때 대처를 제대로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탄핵하는 것은 심한 것 아니냐”며 “탄핵 절차나 과정에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는데 여기(집회에) 처음 나와 보니 내 생각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태극기 측 시대 변화 못 따라가”촛불 집회에는 30만명이 참여했다고 주최 측은 밝혔다. 오후 5시 본행사가 시작하기 직전부터 비가 내리면서 행진도 오후 8시께 예상보다 일찍 마무리됐다.
공직에서 은퇴했다는 김정엽 씨(68)는 노란 리본을 단 태극기를 들고 촛불집회에 나왔다. 그는 태극기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오래 살았다고 다 탄핵에 반대하는 게 아니다”며 “친구들 가운데 절반가량은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하고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나라가 올바른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 세대는 독재와 민주화를 모두 경험했기 때문에 공권력에 의한 폭력은 절대 피해야 한다고 본다”며 “탄핵될 것으로 믿지만 기각된다고 해도 ‘혁명’ 운운하는 건 태극기집회와 다를 바 없는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에서 건물 경비원으로 일한다는 최철민 씨(72)는 “반대편에서 촛불집회가 국가 전복 시도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국가를 옳은 방향으로 이끌려고 노력하는 것”이라며 “탄핵심판이 어떻게 결론이 나든 극한 반응이 나올까봐 벌써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최씨는 “탄핵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탄핵이 된다고 나라가 망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장진영 씨(25·경기 안산)는 “어르신 세대가 전쟁의 트라우마를 겪은 것은 알지만 법치를 주장하면서 폭력을 조장하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동현/성수영/구은서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