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연 감독, 한국 사회의 현실 얼려낸 '해빙'으로 돌아왔다

이수연 감독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오정민 기자 ] 얼음이 녹는 3월에 개봉한 영화 '해빙'은 한국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얼려낸 심리 스릴러물이다.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스릴러물'과 '단서놀이'란 요소를 조합해 솜씨 좋게 담아낸 장본인은 2003년 공포 스릴러물 '4인용 식탁'으로 데뷔한 이수연 감독이다. 이 감독은 14년 만에 들고 온 신작으로 재차 관객의 심장을 펄떡이게 한다. 지난달 28일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이 감독을 만났다. 그는 "감독은 누구나 하고 싶은 이야기에 양념을 첨가해 관객이 먹기 좋게 만들려 한다"며 "얼음이 녹으면 밑의 시체가 떠오르듯, 문제를 덮어버리면 결국 돌아와 값을 치르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경기도 신도시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영화의 인물들은 현대 한국 사회상을 응축해 놓은 듯 하다.

주인공인 변승훈(조진웅 분)은 한강에서 목이 잘린 시체가 떠오른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살인사건 관련 비밀을 알게 된 계약직 내과의이다. 개업 병원의 도산과 이혼을 겪은 후 경기도 신도시로 내려온 변승훈은 세 들어사는 집의 정노인(신구 분)이 수면내시경 중 흘린 살인 고백 같은 말을 듣고 집주인인 정육식당 부자를 의심하게 된다. 이 감독은 변승훈에 대해 "두 번의 경제위기(1997년 IMF 외환위기·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거친 한국에서 어려움을 겪는 중산층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며 "계층 이동이 불가능해진 한국 사회에서 중년 남성의 불안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믿고보는 배우' 조진웅이 의심과 공포에 시달리는 심약한 변승훈 역을 맡아 극을 이끈다. 신구, 김대명이 개발이 진행되면서 아파트촌이 들어서고 있는 경기도 신도시의 토박이인 정육식당 부자로 나서 관객을 혼란에 빠뜨린다.

영화는 경제 성장 속 시스템의 부재 뿐 아니라 개인의 반성이 없는 한국 사회를 비춘다. 이 감독은 "기존의 자연과 풍경을 파괴하고 아파트를 세우는 경기도 신도시는 한국의 욕망을 한 눈에 보여주는 풍경"이라며 "경제력만을 추구하는 가치관의 전락이 나타났다"고 일침을 놨다.배우들의 호연과 함께 상상력을 자극하는 전개가 관객의 숨통을 조인다. 전동차, 라디오 등 일상 생활 속 소리들도 영화에서 조연 노릇을 톡톡히 한다. 이 감독은 시차 혹은 볼륨을 비튼 음향과 영상의 호흡으로 관객의 심리를 조율한다.

그는 "정서를 실어나르는 음악은 스릴러 장르의 중요 요소"라며 "관객과 승부를 할 때 줄거리 외에도 음향이란 무기를 갖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스릴러 영화는 아직 한국에서 비인기장르로 꼽힌다. 영화 '곡성'(687만명)이 지난해 역대 스릴러물 최다 관객 수치를 경신했지만 역대 박스오피스 1, 2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이 감독은 "삶이 평화로울 때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마찬가지로 스릴러물은 태평성대의 장르"라며 "정글과도 같은 한국 사회 속 사람들이 얼른 스릴러물을 즐길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해빙'은 해외에서 먼저 인정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제35회 브뤼셀국제판타스틱영화제, 아시아 영화를 소개하는 유럽 최대 규모의 우디네극동영화제, 하와이국제영화제 등 유수의 해외영화제 초청을 받았다. 이달 1일 국내 개봉에 한발 앞서 북미, 일본, 홍콩, 필리핀 등 해외 4개국에 선판매됐다. 영어판 제목은 '푸른수염'(Bluebeard).
'해빙' 포스터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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