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소비맥락의 실마리, 기억에 남는 '소비 경험' 속에 있다

CEO를 위한 경영학 결정적사건기법을 통한 인사·마케팅 관리

중요성 커진 결정적 사건기법
소비자 '의미 있는 사건' 수집…태도 형성에 미치는 요인 살펴봐
제품·서비스·콘텐츠 뒤섞인 융합형 제품 분석에 유용
시간·비용 많이 들지만 소비자 이해도 높일 수 있어

오정석 < 서울대 경영대 교수 >
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결정적 사건’이라는 용어는 범죄상황을 연상하게 한다. 범행을 증명하는 데 가장 중요한 증거상황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이 용어는 기업의 경영활동, 구체적으로 인사관리와 마케팅 등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는 것일까.
오 정 석 서울대 경영대 교수
‘결정적사건기법(CIT·critical incident technique)’은 1954년 심리학자인 존 플래너건이 직무분석방법론으로 창안했다. 여기서 결정적 사건이란 특정 이슈와 관련해 기억에 남는 사건을 의미한다. 결정적사건기법은 이런 결정적 사건을 이해하고 이들이 발생한 맥락을 살펴 해결책을 고안하는 데 활용하는 접근법이다.인사관리에서는 특정 직업 상황에서 효과적이거나 비효과적인 행동과 관련한 결정적 사건을 수집·분석해 몇 가지 범주로 분류한다. 이 과정에서 사건의 발생 원인, 맥락, 대상인이 취한 행동, 행동의 결과 등의 정보를 수집한다. 예를 들어 공장에서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상황에서 사고상황의 맥락, 담당자의 대처 방안,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 그 결과 등을 면밀히 조사한다. 이런 분석 결과를 활용해 각 직무에 대한 정확한 정의, 프로세스의 개선, 채용 및 인사관리의 규정 확립 등에 적용한다.

이 접근법은 경영의 다른 분야들, 특히 소비자를 다루는 마케팅분야에서 활용한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소비자는 만족, 불만족, 충성심, 구전의도 같은 다양한 태도를 형성한다. 이런 태도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과 영향을 주는 방식을 정확히 분석해야 효율적인 소비자 공략이 가능해진다.

결정적사건기법에서는 소비 기간에 기억에 남는 ‘결정적인 사건’을 서술하도록 한다. 이 사건들은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는데 기억에 남을 정도의 경험인 만큼 소비자의 태도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결정적사건기법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소비자가 직접 영향을 받은 사건을 기술하므로 연구자가 예측하지 못하는 요인을 놓칠 우려가 없다. 둘째, 이 요인들의 범주를 미리 정해 놓을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유연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셋째, 각 요인을 긍정적 부정적 양면으로 나눠 살펴볼 수 있기에 개선의 방향성이 확실하다. 넷째, 특정 요인이 영향력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을 때 구체적인 맥락을 초기 설문을 찾아 파악할 수 있다. 소비자 설문 과정에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기는 하지만 그만큼 소비자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는 장점이 있다.

결정적사건기법은 소비맥락이 복잡할 경우 유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융합시대가 만개하면서 더 이상 제품, 서비스, 콘텐츠의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만물이 인터넷에 접속되고 플랫폼에 속하면서 지능이 부여되며 이를 바탕으로 한 서비스들이 얹혀지고 있다. 스마트폰산업만 보더라도 스마트폰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사용 편의성, 앱(응용프로그램)·콘텐츠 보유량, 네트워크·통화품질, 화면 크기, 사후서비스 만족도, 제품 안정성 등 다양하며 이들에 대한 소비자의 인지에 따라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시장점유율과 수익성은 주기적으로 변하고 있다. 소비자의 품질경험을 높이기 위해서는 제조사 입장에서 네트워크 사업자, 앱·콘텐츠 개발자, 소프트웨어 개발자, 부품공급업자 등 다양한 영역의 사업자와 긴밀하게 협업할 수밖에 없다. 기존 제품 위주의 공급사슬 범위를 관련 서비스와 콘텐츠 영역까지 넓혀 관리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처럼 융합상품에 대한 소비자 반응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제품, 서비스, 콘텐츠 등과 같이 특성이 매우 다른 영역에 분포해 있을 경우에는 영역별 요인을 도출하고 이들이 복합적으로 소비자 인지에 미치는 영향을 알기가 쉽지 않다. 통화품질, 네트워크 속도 등의 품질 요인과 고품질의 앱과 서비스 제공 여부 등은 사용자 개인별 인식의 편차가 크고 측정 단위도 다양하기 때문이다.필자는 결정적사건기법을 스마트폰 소비자 분석에 적용해봤다. 소비자 795명의 설문은 두 단계를 거쳐 분석됐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응답자별로 스마트폰 사용 시 다섯 개까지 기억에 남는 결정적 사건을 열거하도록 했다. 이 중 매우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경험들만 추려 13개 그룹으로 분류했다. 그 결과 스마트폰 제품 자체, 제품 관련 서비스, 네트워크 서비스, 콘텐츠의 네 가지 대분류로 묶는 것이 가능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위에서 도출한 13개의 그룹 요인별로 긍정적, 부정적인 결정적 사건을 겪은 횟수를 질문했다. 또 소비자의 의견, 즉 제품 충성도와 구전의도도 질문했는데 특히 제조사, 통신사, 콘텐츠 제공사에 대해 각각 질문해 어떤 사업자의 역할이 중요한지를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먼저 결정적사건기법을 적용한 기존 연구에서는 부정적인 결정적 사건이 긍정적 사건보다 소비자 반응에 더 큰 영향을 준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긍정적 사건들이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연구들은 자동차 등과 같이 교체 수요가 주를 이루는 성숙단계 시장을 대상으로 한 데 비해 연구가 진행된 시점의 스마트폰산업은 혁신제품산업으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던 상황이었다. 즉, 혁신제품이면서 제품주기상 시장이 성장하는 단계에서는 긍정적 사건의 영향이 더 큰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중요한 시사점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자동차와 달리 스마트폰은 소비자 비용 지출에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고 이런 점이 긍정적 사건들의 영향력을 더 크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

제품, 제품 관련 서비스, 네트워크, 콘텐츠 영역 중에서는 네트워크영역에서 긍정적 사건의 영향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과거 무선데이터 통신에 대한 사용자의 기대치가 낮은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성능을 접하며 일종의 신선한 경험을 제공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콘텐츠 영역은 긍정적, 부정적 요인이 모두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나 스마트폰을 쓰는 궁극적인 이유는 콘텐츠·서비스 이용임을 선명하게 부각시켰다. 마지막으로 스마트폰 제조사, 네트워크 서비스 제공자, 콘텐츠 제공자 중에서는 제조사가 모든 요인의 영향을 제일 강하게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마트폰에 대한 사용자의 전체 경험에는 제조사가 직접 관리할 수 없는 네트워크, 콘텐츠 영역 품질이 중요하지만 이 경험들의 결과는 제조사가 책임져야 함을 의미한다. 제조사는 네트워크 사업자 및 콘텐츠 제공자들과 같이 융합산업의 가치사슬에 연관된 다른 영역 사업자들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총체적인 소비자 만족을 위해 투자하고 노력해야 함을 시사한다.이처럼 결정적사건기법은 인사조직과 마케팅 영역에 유연하고 깊이 있는 접근방식을 제공한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단점이 있으나 그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 "품질만큼 서비스도 중요" 자동차업계의 깨달음

1996년 캐나다 맥마스터대의 노엄 아처와 조지 웨솔로스키는 결정적사건기법을 활용해 자동차 이용자의 충성도 및 구전의향에 대한 요인을 분석했다. 자동차산업 경쟁이 격화되면서 사후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되던 시기였고, 이는 과거 자동차의 제품 품질에만 집중하던 기업과 연구자에게 새로운 과제를 줬다. 자동차를 더 이상 제품만이 아니라 제품과 서비스의 결합체로 인식하고 소비자 관리도 서비스영역까지 넓혀야 할 필요성을 확인한 것이다.

이 연구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결론이 도출됐다. 첫째, 소비자는 자동차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은 일정 부분 참고 넘어가지만 부정적인 서비스 경험에는 참을성이 적고 대리점과 제조사 양쪽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된다. 둘째, 긍정적인 경험은 일정 부분 부정적인 경험을 상쇄하는 효과가 있고 이는 서비스 영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셋째, 자동차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이 두 번 이상 발생하면 제조사 인식이 급격하게 나빠진다.넷째, 품질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가 높아진 자동차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은 소비자 인식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이 연구는 자동차 제품 품질 향상에 주력하던 제조사들이 서비스 영역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오정석 < 서울대 경영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