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USTR 보고서 정말 과장 보도됐나

박수진 워싱턴 특파원 psj@hankyung.com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무역정책보고서 내용을 보도한 지난 3일자 기사에 대해 여러 공무원이 ‘불평’을 늘어놨다. 한국 언론들이 보고서 내용을 너무 ‘확대 해석’하고 ‘부풀렸다’는 지적이었다. USTR이 매년 내놓는 보고서여서 내용이 예년과 대동소이한데 너무 부정적으로 썼다고 했다.

정말 그럴까. 지난해와 올해 보고서를 비교해 봤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를 보는 USTR의 시각과 평가가 완전히 달랐다. 지난해 보고서는 ‘양자·지역협상 및 협정 평가’ 부문에서 “한국의 수입(2015년 기준)은 전년보다 16.5% 줄었는데 미국으로부터 수입은 단지 2.8%밖에 안 줄었다”고 명시했다. 한·미 FTA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묻어난다.올해 보고서는 달랐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미국의 대(對)한국 무역적자가 132억달러에서 276억달러로 늘었다”고 시작한다. “이런 결과는 미국인들이 협정으로부터 바라던 것이 아니다”고 진단했다.

두 보고서를 한 번만 읽어봐도 도널드 트럼프 정권 출범 이후 한·미 FTA를 보는 미국의 시각이 얼마나 부정적으로 바뀌었는지 알 수 있다. 향후 무역분쟁에서 미국법을 우선 적용하고, 통상법 301조 같은 강력한 제재수단을 언급한 대목은 말할 필요도 없다. 보고서 행간에선 ‘각오하고 있으라’라는 경고가 수없이 읽힌다.

한국이 먼저 나서 한·미 FTA 재협상을 떠들어댈 필요는 없다. “협상 전에 미국 측만 유리하게 하는 일”이라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그래도 보고서를 정확히 분석하는 것이 기본이다. 우려되는 바는 이런 안이한 분석이 혹시나 한·미 간 ‘찰떡공조론’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나 하는 점이다. 미국이 ‘안보혈맹’ 한국을 특별히 생각하기 때문에 한·미 FTA 재협상, 주한미군 방위비 증액 같은 민감한 이슈를 묻어 두고 있다는 ‘오판(誤判)’ 말이다.“미국은 지금 반미(反美) 여론이 한국의 대통령 선거판을 흔들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대선만 끝나면 누가 정권을 잡든 바로 청구서가 한국에 날아들 것이다. ” 미국의 한 정치평론가가 던진 경고를 귀담아들을 때다. 지금이라도 한·미 FTA 재협상 전략을 부지런히 짜야 한다.

박수진 워싱턴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