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가 생명, 동대문 패션 "지금 망하나…1년 후 죽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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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패션' 싹 자르는 전안법 1년 유예됐지만…제조·직매형 의류(SPA) 브랜드 H&M과 자라(ZARA)는 1주일마다 제품 카탈로그를 바꾼다. 상품도 1주일 만에 전 세계로 배송된다. 이들은 유니클로와 함께 패스트패션을 글로벌 패션의 주류로 만들었다. 국내에도 이런 패스트패션 시장이 한 곳 있다. 서울 동대문이다. 빠르게 유행을 반영한 옷을 제작해 국내외 소비자를 끌어들였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불가능해진다.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전안법)’ 때문이다.
글로벌 패스트패션 자라·H&M·유니클로
1주일마다 상품 바뀌는데
한국 패스트패션 산지 동대문은 KC인증받는데
1주일 소비할 판
아마존 등 해외업체는 인증 필요하지 않아
국내 온라인몰만 타격…소비자가격도 상승 불가피
해외 진출하는 동대문 디자이너 사라질 판지대식 동대문패션타운관광특구협의회 사무국장은 “해외 선진국에선 의류 제조 및 판매업체들이 안전 관련 인증을 받지 않는다”며 “영세업자들이 제품 안전 검사에 드는 모든 비용을 부담한다면 동대문에서 시작한 ‘스타일난다’ ‘밀 스튜디오’ 같은 브랜드는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브랜드는 동대문시장을 기반으로 해외로 진출했다.
전안법의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회는 작년 1월 정부가 발의한 전안법을 통과시켰다. 옷이나 가구 같은 생활용품도 전기용품 수준으로 안전하다는 KC 인증(국가통합 인증)을 받도록 한 법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옥시 가습기 사태 이후 안전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며 “소비자의 안전을 지키자는 취지에서 생활용품을 전기제품과 통합해 관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를 1년 유예하는 전안법 개정안이 지난 2일 국회를 통과했다.하지만 적용 대상에 옷과 주얼리 등이 포함되면서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하는 수공업자(핸드메이드)와 의류판매상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동대문 상가에서 구슬 같은 재료를 사서 인터넷을 통해 팔찌, 목걸이를 만들어 파는 조아연 씨(20)는 “전안법이 시행되면 팔찌 하나에 들어가는 구슬 하나하나를 다 검사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크기나 색깔이 다른 구슬 20개가 들어가면 구슬 한 개당 검사비만 10만원씩 들어 총 200만원을 써야 한다”고 했다.
박중현 동대문상가상인회장은 “동대문은 아침에 원단을 받으면 저녁에 옷이 나올 정도로 역동적인 곳”이라며 “색깔이나 재질이 달라질 때마다 다시 KC 인증을 획득해야 한다면 동대문에서 기반을 닦고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는 디자이너는 영원히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국내 사이트만 차별하는 전안법
병행 수입업자와 해외 직구를 대행하는 판매대행업자들도 반발하고 있다. 최종 판매업자가 수입 통관 과정에서 KC 인증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물건을 파는 채널인 오픈마켓과 소셜커머스 같은 국내 온라인몰도 역차별이라는 이유로 전안법에 반기를 들고 있다. 아마존이나 라쿠텐 등 해외 업체는 KC 인증을 받지 않아도 물건을 들여올 수 있지만, 국내 쇼핑 사이트에서 물건을 팔려면 KC 인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안법이 여기저기서 뭇매를 맞자 정부는 당초 지난 1월28일이었던 전안법 시행 시기를 내년 1월1일로 늦췄다. 하지만 소상공인들은 “오늘 죽으나 내일 죽으나 마찬가지”라며 온라인을 중심으로 전안법 폐지를 위한 청원운동을 벌이고 있다.동대문에서 액세서리 업체 ‘가리온’을 운영하는 임미영 씨는 “1년 뒤 제품을 판매하지 못하면 그때 가서 재고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전안법은 비용을 늘려 소비자가격만 올려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정철/조아란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