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권리금 논란] 소송전으로 번진 '권리금 보호기간'…법원 "5년까지만 보호"

1·2심 판결 90% 임차인 패소

"계약갱신요구권 있는 5년 지나면 권리 상실"
"임차인 보호 위한 입법 취지에 벗어나" 반론
한자리에서 5년 이상 영업한 임차인에게 권리금 회수 기회를 줄 필요가 없다는 법원 판결이 잇따르면서 임차인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7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상가 앞에 임차인을 찾는 광고문이 붙어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A씨는 2009년부터 2015년까지 6년간 서울 마포구에서 상가를 임차해 카페를 운영했다. 처음 가게를 넘겨받을 때 기존 임차인에게 권리금 9800만원을 지급했다. 6년 후 가게를 접으면서 새로운 임차인으로부터 권리금 1억3000만원을 받기로 계약했다. 그러나 건물주는 새 임차인과의 계약을 거부했다. 건물주와 새 임차인 간 계약이 체결되지 않으면 A씨는 권리금을 한푼도 보상받지 못하고 건물을 비워야 한다.

A씨는 기존 임차인이 새로운 임차인에게서 권리금을 회수하는 것을 건물주가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을 믿고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건물주 편을 들어줬다. 권리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기간인 ‘최초 계약 후 5년’이 지났다고 판단했다.
◆“권리금 회수 기간은 5년”

7일 부동산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5년 이상 장기간 한 곳에서 장사를 한 임차인이 법원 판결에 따라 권리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일이 줄을 잇고 있다. 과거 세입자가 피땀으로 형성한 권리금을 건물주가 가로채는 일이 많았다. 건물주는 장사가 잘된다 싶으면 리모델링 매매 등을 이유로 세입자를 내쫓았다. 이후 건물주가 권리금을 받고 새 임차인을 들이거나 자신이 직접 장사를 했다. 쫓겨난 세입자는 기존에 지급한 권리금을 한푼도 챙기지 못했다. 심지어 6억원의 시설을 투입하고 1년 만에 권리금을 한푼도 못 받고 쫓겨난 임차인도 있었다.

이런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2001년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만들어졌다. 이 법은 임차인이 적어도 한자리에서 5년 동안은 장사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더해 2015년 5월에는 권리금을 회수할 수 있는 장치도 도입했다. 기존 임차인이 새 임차인을 구해오면 건물주가 군말 없이 새 임차인과 계약하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존 임차인은 새 임차인에게서 권리금을 회수할 수 있다.그러나 임차인이 권리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기간을 법에서 정하지 않고 있어 혼선이 생겼다.

권리금 회수 보장 기간에 대한 소송은 전국에서 수십 건 벌어지고 있다. 1심 선고는 20여건 이뤄졌다. 2심 선고도 5건 안팎 나왔다. 법조계에 따르면 1, 2심 판결의 90%는 권리금 회수 기회를 5년 동안만 보장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5년 동안 영업을 통해 충분히 지급한 권리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법무법인 효현의 김재권 대표 변호사는 “1, 2심 법원이 임대인의 계약 체결의 자유, 사유재산권 침해라는 위헌소지를 고려해 법률 해석을 하고 있는 만큼 대법원에서도 판세가 뒤집히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터줏대감 상가 권리금 비상

주관부서인 법무부는 2015년 유권해석을 통해 “임차인이 계약 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 5년의 기간이 지난 이후라도 임대차가 종료됐다면 권리금을 보호받을 수 있고, 임차인에게 계약 갱신 요구권이 있는지 여부와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이 같은 유권해석을 반영한 판례도 일부지만 나오고 있다. 지난달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에서는 한 대학 캠퍼스 건물에서 편의점을 운영해오던 임차인 A씨가 건물주 B씨를 상대로 낸 보증금반환소송에서 임대차기간이 5년 이상 지난 사건에 대해서도 세입자의 권리금 회수 기회 보호조항이 적용된다는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명문의 규정도 없는 상가임대차보호법 제10조 제2항(5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인정되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준용 또는 유추 적용해 임차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제한하는 것은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 기회를 보장한 상가임대차보호법 제10조의 4의 취지에 반한다”고 판단했다.최광석 로티스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권리금이 하나도 없던 죽은 상가에 들어가 성공적으로 장사하고 상권을 활성화시켰는데 5년이 지났다고 권리금 회수가 안 된다면 임차인 보호라는 입법 취지를 살리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