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자주독립국의 길

"보복 압박 더하는 중국…분열된 우리 정치상황 탓이 커
여기서 밀리면 어떤 능욕 당할지 상상하기조차 두려워

경제의 중국 의존도 낮추고 전쟁도 불사한다는 결기로
온 국민이 단결할 때"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경제학 >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이 날로 도를 더해 가고 있다. 한한령(限韓令)으로 한류의 유입을 막은 데 이어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그룹 사업장의 영업을 중단시키고 한국 관광을 막는가 하면 초등학생까지 동원해 한국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심지어 월드컵 예선을 위해 방문하는 우리 축구대표팀의 전세기 운항도 가로막았다. 과거 스스로 ‘마늘 전쟁’이라고 불렀던 한·중 마늘 분쟁 때처럼 중국은 전쟁을 치르듯이 모든 가용 수단을 동원하는 모습이다. 일본과의 영토 분쟁이 격화됐을 때 취한 중국 정부의 행동에 비춰 이런 식의 보복은 한동안 더욱 심하게 지속될 전망이다.

중국은 왜 기를 쓰고 한국의 사드 배치를 반대하나? 사드 배치가 중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라는 구실을 내세우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사드의 운용을 위해 함께 배치되는 AN/TPY-2 레이더 시스템은 종말형으로 중국은 그 탐지 범위에서 벗어난다. 방향도 북한을 향한다. 중국은 언제라도 소프트웨어만 바꾸고 방향을 틀면 가능하다고 강변하지만 레이더 시스템을 리셋하거나 방향을 조정하는 것은 그때그때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의심되는 것은 미국을 오키나와에서 남중국해로 이어지는 제1도련선(島線) 바깥으로, 궁극적으로는 괌에서 서태평양을 포함하는 제2도련선 바깥으로 몰아낸다는 중국의 대전략이다. 이 ‘반접근지역거부(anti-access-area denial)’ 전략에 필수적인 창바이산(백두산) 근처의 중거리 미사일이 무력화될 것을 우려하는 게 아닌가 추측할 수는 있다.그렇다고 해도 사드 배치를 먼저 제안한 미국에는 제대로 말도 못하면서 왜 한국만 압박하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한국 국내 정치 상황에 비춰 아직도 사드 배치를 되돌릴 여지가 있다고 중국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수당의 의원들이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데다 유력한 대권 후보는 이 문제를 차기 정부에 맡기라고 요구하고 있다. 만만한 한국을 압박하면 굳이 미국과 맞서지 않고도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하다.

더 근본적으로 중국은 차제에 한국을 길들여 한국을 중국의 궤도권으로 확실히 끌어들일 심산인 것으로 보인다. 부상한 중국은 일종의 ‘삶의 공간’을 확보하려고 한다. 미국에 제안한 이른바 ‘신형대국 관계’도 이를 인정해 달라는 요구와 다름 없다. 중국은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지 않을 테니 미국도 중국의 ‘핵심 이익’을 존중해 달라는 게 신형대국 관계의 요체다. 이 핵심 이익은 당연히 중국의 영토 보존과 주변국에 대한 영향력을 가리킨다. “태평양은 중국과 미국 두 나라를 모두 포용할 만큼 넓다”는 시진핑의 발언도 이를 증명한다. 중국이 구상하는 새로운 동북아 질서에서 한국은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지닌다. 박근혜 정부 초기의 한·중 밀월 속에서 중국은 한국을 자신의 궤도로 끌어들였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렇게 공을 들인 한국이 사드 배치를 결정하고 한·미 동맹을 확인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자 분기탱천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비열하고 난폭한 일련의 조치들은 중국이 주도하는 동북아 질서의 모습이 어떨지 짐작하게 한다. 이제 문제는 단순 사드 배치의 차원을 넘어섰다. 한국은 제한된 주권만을 누리는 신중화 질서의 속국이 될 것인지 아니면 자주독립국으로 남을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여기서 밀리면 앞으로 어떤 능욕을 당할지 상상하기조차 두렵다.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다수당의 의원들과 대선 예비 후보들도 이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불가피한 선택을 비난하면서 중국의 횡포를 묵과해서는 안 된다. 아울러 정부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앞세워 21세기판 조공제도를 건설하려는 중국의 민낯을 전 세계에 알리고 국제공조를 통해 중국에 맞서는 외교전을 펼쳐야 한다. 기업들도 목전의 피해는 크지만 장차 더 큰 이익을 위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전쟁이라도 불사하겠다는 결기로 온 국민이 단결할 때다.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경제학 yjlee@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