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표류기] 전단지 돌려보니…장당 40원어치 용기

청년공감 '청년 표류기' 12회
20년 전의 나, 20년 뒤의 너

용기↔위축 무한 반복 끝에
"그래 다시 용기를 내보자"
#영상 500장 전단지 알바 현장으로


전국 초등학교 입학식이 열린 지난 2일 오전 11시, 서울 노원구 한 초등학교 앞. 학생이 될 아이들과 학부모가 될 어른들이 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같은 시각 학교 밖 정문과 후문에도 20여명 청년이 모였다. 학생도 학부모도 아니었다. 기자와 같은 일용직 아르바이트생, 학습지 교사, 태권도 사범 등 분야는 달랐지만 온 이유는 같았다. 전단지 배포였다.

“알바하러 오신 분이죠. (전단지) 다 돌리시고 전화 주세요.” 영어학원 직원이 전단지가 가득 찬 종이가방을 건넨 뒤 사라졌다. 전해들은 거라곤 학원 이름 뿐. 관련 정보는 전단지에 다 있다.
전단지 아르바이트는 간단했다. 총 500장 전단지를 건네기만 하면 끝. 건네고 받기를 500번 반복하면 됐다. 일당 2만원. 장당 40원. 정해진 근무시간이 없다. 시급 개념도 없다. 할당량만 채우면 그 즉시 끝난다.
입학식을 마친 아이와 부모가 손을 잡고 하나 둘 교문 밖으로 나왔다. 처음 보는 사이지만 적극적으로 다가가 전단지를 건네며 말했다."안녕하세요. OO 학원입니다."

학부모들은 비교적 거북함 없이 종이를 받아 갔다. 대충 봐도 열에 일곱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받았다. 전단지 인심 참 후했다. 학교가 아닌 지하철역 앞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전단지 내 포장된 공짜 연필 덕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하지만 인근 공터에 버려진 많은 연필을 보고 아님을 알았다. 초등학생에게 연필은 먹히지 않는다. 부모가 전단지를 받은 건 순전히 아이 때문이었다. 입학식에 온 학부모 김민성 씨(39)는 “아이 앞에선 여러모로 조심하게 된다”라며 "기분 좋은 아이 입학식이라 흔쾌히 받았다"고 웃으며 말했다.

다만 주머니 속 손을 꺼내게 만드는 건 쉽지 않았다. "괜찮다", "미안하다"며 말로만 거부하는 이도 있었다. 대꾸도 눈길도 한번 주지 않고, 앞만 보고 가기도 했다. "00 학원.."이라고 혼자 허공에 얘기하는 듯 했다. “됐어”라는 반말투로 무시당할 때면 괜스레 위축됐다. 위축했던만큼 미소와 인사성은 사라져갔다. 마음에 상처를 받는 대가로 돈을 버는 ‘감정노동자’는 콜센터뿐 아니라, 길 위에도 있었다.
학부모와 신입생으로 가득했던 운동장은 이내 의자만 덩그러했다. 같이 시작했던 전단지 동지들은 1시간만에 목표치를 채우고 뒷정리에 들어갔다.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반면 기자의 종이가방엔 아직 전단지가 절반이나 남아있었다. 이날 입학한 초등학생은 160여 명. 한 반에 25명꼴로 총 7반이었다. 20년 전 기자가 초등학생일 때는 한 반에 40명씩 있었다. 그렇게 10반, 한 학년만 400명이 다녔다. 신문과 방송에서 접하던 저출산 문제가 전단지 알바에도 영향을 미칠 진 몰랐다. 저출산이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전단지를 옆구리에 끼고서 실감할 줄은 몰랐다.

집에 가려면 전단지 가방을 다 비워야만 했다. 배포 지역을 바꿔야 했다. 초등학교 후문 앞 인근 아파트 상가로 이동했다. 이제 고객은 아파트 주민들이다. 문제는 학부모보다 아파트 주민들은 더 싸늘했다는 점. 도시에 흔한, 매정한 직장인들 같았다. 전단지 배포 속도는 더 느려졌다. 오후 1시를 넘기자 아파트 단지는 더 조용했다. 학생은 학교에, 사회인은 일터에 있을 시간, 아파트 단지는 실패였다.

다시 사람을 찾아 나서야 했다. 아파트 단지를 나와 대로변으로 나갔다. 아뿔사. 달리는 차들 만큼이나 대로변 사람들도 갈 길이 바빴다. 전단지를 받는 이는 열명 중 둘 셋 뿐. 다가가는 것만으로 불쾌해하기도 했다.

행인을 막아서려면 용기를 다시 내야했다. 그러다 무시당하면서 또 위축됐다. 다시 전단지를 건내려면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 용기도 더 큰 싸늘함에 위축됐다. 용기와 위축의 무한 반복 속에서 감정에너지는 순식간에 소모됐다. 아직 손아귀 가득 약 100장이 남았다. 문득 시지프스가 떠올랐다.
전단지가 꼴도 보기 싫어질 즈음 한 무리 초등학생들과 마주쳤다. 대뜸 말을 걸었다. 학원 가는 아이들이라고 했다. “이거 뭐예요?”라며 한 아이가 전단지에 관심을 보였다. 처음이었다, 이날 기자에게 먼저 말을 걸어준 사람 말이다.

"너 줄까?"하고 전단지 한 장을 건넸다. 넙죽 받았다. 다른 아이들도 하나씩 받아 갔다. 아이들은 호기심이 강했다. 두 장 달라는 아이도 있었다. 기꺼이 두 장 줬다. 달라는 대로 줬다. 한 아이가 왜 많이 주냐고 물었다. “집에 가야 하거든”이라 답했다. 아이는 의아한 표정을 짓고선 이내 웃었다. 아이들이 참 고마웠다.
2시간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 한장 남았다. 전단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건 기자가 갖기로 했다. 살면서 처음 만난 꼭 챙겨가고 싶은 전단지였다. 평소 점심시간, 회사 근처에서 식당 전단지를 돌리는 아주머니가 떠올랐다. 받는 입장일 때는 어차피 버릴 거라 여겨 받지 않았다. 인쇄소에 돈 주고 만들었을 홍보물이라 그냥 버리기도 미안했다. 혹시 아주머니가 길가에 버려진 전단지를 보며 실망할거라 생각했다. 대신 고개를 숙인채 거절하는게 좋은 대처라 여겼다.

역지사지(易地思之)로 내가 돌려아하는 전단지에 퇴근과 일당이 저당잡혀보니 확실히 알았다. 어느 쪽이 추운 날 거리에 나와있는 아주머니를 일찍 집에 보내드리는 일인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이웃에게 손을 내미는 일이 결코 어렵지 않다는 걸 말이다. 1만~2만원이면 보통 청년의 하루 생활비다. 지하철 출구 앞에서 손 한번 내밀면 된다. 장당 40원어치 교훈이었다.

전단지를 흔쾌히 받아간 아이들이 떠올랐다. 그 아이들도 지금의 기자처럼 20년 뒤 타인에게 싸늘하고, 내 앞길만 가는 어른이 될까. 20년 전 기자도 누군가의 전단지를 아무런 의심없이, 즐겁게, 흔쾌히 받았을까 기억해보려 했다. 잘 떠오르지 않는다. 명백한 건 20년이 지난 지금은 20년이 지난 지금은 누군가의 전단지에 시큰둥하고, 누군가의 접근을 그저 불쾌하게 생각한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에겐 무슨 일들이 벌어진 걸까. 혼밥(홀로 밥먹기), 혼술(혼자 술마시기)이 자칫 유행까지 돼버린 이유는 어쩌면 먼저 손 내밀고, 함께 어울리고,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용기를 내는 이들보다 주변의 싸늘함에 위축돼 용기를 내지 않는 청년들이 훨씬 많아져서일지도 모른다.

먼저 마음을 주더라도 상처 받을 수 있기에, 처음부터 안주고 상처도 안받겠다고 내가 먼저 마음의 문을 잠근 건 아닌가. 용기와 위축의 무한 반복 속에서 결국 위축이 이겨버린 건 아닐까. 오늘도 거리 곳곳엔 누군가가 건네고 건네받은 전단지가 쓰레기로 나뒹굴고 있다.
# ‘청년 표류기’ ? 세상과 사회라는 뭍에 무사히 닿기 위해 표류하는 우리네 청춘의 이야기입니다. 청년과 소통하기 위해 명함 대신 손을 내밀고, 넥타이 대신 신발 끈을 묶습니다. 여러분의 '청년 표류기'를 공유해주세요. 뉴스래빗 대표 메일이나 뉴스래빗 페이스북 메시지로 각자의 '표류 상황'을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기록하겠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책임= 김민성, 연구= 이재근 한경닷컴 기자 tpdnjs22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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