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탐하는 사람들의 심리 추적…한국 정치 상황과 묘하게 닮았네~

헨리크 입센의 연극 '왕위 주장자들' 국내 초연…31일 개막
연극 ‘왕위 주장자들’을 연습 중인 스쿨레 백작 역의 배우 유성주(가운데)와 서울시극단 단원들.
“오늘 불의 시련으로 왕위에 대한 나의 권리가 확인되었으므로, 6년 전 내가 왕으로 선출된 것에 대한 의회의 승인을 요구하는 바요.”(호콘)

“그것 때문에 의회를 소집할 순 없소. 불의 시련은 당신에게 왕국을 준 것이 아니라 당신도 왕위 주장자의 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한 것뿐이오.”(스쿨레 백작)호콘의 추종자들과 스쿨레 백작의 호위병들이 양쪽에서 칼을 겨누며 두 사람 곁으로 모여든다. 서로 견제하던 두 사람은 의회로 향하고, 황금의자는 결국 호콘에게 돌아간다. 호콘이 깊은숨을 내쉬며 “드디어 내가 노르웨이의 왕이다”라고 외치고 퇴장하자 스쿨레 백작이 뒤따라 나와 이렇게 외친다. “왕국을 다스리는 건 여전히 나다!”

지난 1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3층 종합연습실. 서울시극단 단원이 오는 31일부터 무대에 올릴 창단 20주년 기념 연극 ‘왕위 주장자들’의 1막 장면을 선보였다. ‘왕위 주장자들’은 ‘페르귄트’ ‘인형의 집’ ‘민중의 적’ 등으로 친숙한 헨리크 입센(1828~1906)의 역사극 중 하나로 국내 초연이다. 2014년 11월 입센의 연극 ‘사회의 기둥들’을 선보였던 제작진이 다시 뭉쳤다. 김광보 서울시극단 단장(연출), 김미혜 한양대 명예교수(번역), 고연옥 작가(각색), 박동우 무대 디자이너 등이다.

‘사회의 기둥들’은 중심을 잃고 침몰하는 한국 사회와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해 화제가 됐다. 이번 작품은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이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묘하게 소재와 시기가 맞아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단장은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다. 대선을 염두에 두고 의도적으로 준비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도 “절망의 시기를 지나 희망을 제시하기 위한 작품”이라며 “민중이 희망을 품었던 인물이 과연 희망이 될 만한 인물이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13세기 노르웨이, 스베레왕의 서거 후 벌어진 왕권 다툼을 소재로 한 이 작품에는 권력을 쥐려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자신의 소명을 확신하며 스스로 왕위 계승 적임자라고 믿는 호콘(김주헌 분), 왕 서거 후 6년간 섭정하며 왕국을 자신의 것이라 믿게 된 스쿨레 백작(유성주 분), 이들 사이를 이간질하며 자신의 입지를 굳히려는 니콜라스 주교(유연수 분)다.

권력을 탐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그린 역사극으로 보이지만, 각 캐릭터의 심리를 파헤치는 데 더 집중한다. 가장 현대적인 캐릭터로 꼽히는 스쿨레 백작은 군중 앞에서는 확신에 찬 듯 보이지만 혼자 있을 땐 자신이 리더로서 적합한 인물인지 끊임없이 두려워하는 ‘의심하는 인간’이다. 그는 이렇게 독백한다. “내 의심은 호콘의 확신만큼이나 뿌리 깊은 것이다. 내가 왕국을 얻는다 해도 이 의심은 전보다 더 강하게 남아 불안에 찬 나를 천천히 고문하면서 갉아먹고, 찢어놓고, 소모시키겠지.”

김 교수는 “결국 이 작품은 스스로에 대해 확신을 갖고, 소명의식과 신념에 따라 자기 일에 매진하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결론을 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권을 꿈꾸는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는 4월2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2만~5만원.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