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진(嗔): 정직과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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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32
손주은 < 메가스터디그룹 회장 son@megastudy.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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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서 嗔(성낼 진)이란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20여년 전 윤리사상사 강의를 준비하던 때였다. 나의 입은 항상 진실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불교의 삼독(三毒)인 탐(貪), 진(嗔), 치(癡) 중 하나였던 진을 처음 본 순간 충격에 휩싸였다. 진(嗔)은 口(입 구)+眞(참 진)이 결합한 것인데도 남을 화나게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입은 자기 생각대로 진실하게 말하는데 도리어 남을 화나게 하고 사람을 망치는 삼독이 되다니. 놀라운 한자의 조어 아닌가. 그렇다. 세상사가 각자의 진실, 각 진영의 논리만 얘기하면 감정의 골만 깊어질 뿐이다.2007년 메가스터디그룹 기업이미지통합(CI)을 위해 새로운 슬로건을 만들면서 3대 핵심가치(정직과 배려, 도전과 혁신, 최고지향)를 정했다. 이 중에서 특히 ‘정직과 배려’는 진(嗔)이란 글자의 의미를 되새기며 정한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청교도 집안에서 자라 정직하라는 가르침을 받아왔고, 지금까지도 정직을 삶과 비즈니스의 중심 가치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이 ‘정직’에는 뭔가 부족한 게 있다는 느낌이었고 여기에 무엇이 더해져야 완전한 의미를 이룰 수 있을까 고민해왔다.
그러던 중 이 진(嗔)이란 글자가 지닌 의미를 참고해 정직에 배려를 결합시켰다. 구성원 각자의 진실과 정직에 상대에 대한 배려가 깃든다면 완전체로서의 공동체를 이루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작금의 현실을 보면서 한국 사회가 정직에 기초해서 신뢰를 드높이고, 더 나아가 이웃과 상대에 대한 진심 어린 배려가 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손주은 < 메가스터디그룹 회장 son@megastudy.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