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스페인이길 거부하는 바르셀로나 가우디·축구·카탈루냐의 열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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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의 바르셀로나스페인에 도착해서 가장 뚜렷이 기억에 남는 풍경은 ‘스페인은 고통 그 자체다(Spain is pain)’를 스프레이로 쓴 큼지막한 글씨였다.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느낀 것은 스페인은 하나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스페인에 대한 인상은 열정적인, 격정적인, 관능이 이글거리는 태양의 나라였다. 하지만 이는 스페인에 대한 인상을 단편적으로 이야기한 것일 뿐 스페인의 진짜 모습을 오해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스페인 땅이 아니었다. 바르셀로나 사람들에게는 카탈루냐어가 숨을 쉬고, 마드리드보다는 파리에서 영향을 받은 거리가 즐비하며, 바르셀로나의 심장인 FC 바르셀로나가 살아 있었다. 바르셀로나는 카스티야(마드리드가 속한 곳)에 저항하는 카탈루냐의 보고였다.
바르셀로나에서 카탈루냐인의 열정을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은 FC 바르셀로나의 본거지인 누 캄프 축구장이다. 9만9354명을 수용할 수 있는 유럽 최대 축구경기장. 나는 이곳에서 흰색 승용차를 운전해 경기장을 들어서는 리오넬 메시를 볼 수 있었다. 경기장에서는 다비드 비야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가 메시와 함께 뛰는 것을 목격했다. 그들의 경기 모습은 거의 신의 경지를 보는 듯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더 인상적인 것은 관중의 열기였다.
넓디넓은 축구장은 입추의 여지 없이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경기를 칭하는 엘 클라시코 경기도 아닌데, 9만명이 넘는 관중이 목이 터져라 비닐봉지를 흔들며 FC 바르셀로나를 응원했다. 솔직히 축구 경기보다 관중이 더 스펙터클했다. 상대팀 레알 베티스가 골을 넣어서 무의식중에 ‘골’이라고 외치자 주변 사람 모두가 나를 째려봤다. 경기는 레알 마드리드의 3-1 승리로 끝났다. 경기가 끝난 뒤 주변은 사람들로 넘쳐났고, 택시를 잡지 못해 길을 걷다 만원 버스에서 터질 듯이 밀리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경기가 아니라 거의 광기에 가까운 축제처럼 보였다.
그러나 경기장을 한 발자국만 벗어나면 현실은 달라진다. 몬주익 언덕 앞에는 떡 하니 스페인광장이 자리잡고 있고, 스페인 내전의 상흔을 담은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빌바오도, 바르셀로나도 아닌 마드리드의 소피아왕립박물관 벽에 걸려 있다.그런 땅에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이 존재했다. 바르셀로나가 스페인에 흡수될 수 없듯이, 가우디의 건축물 역시 그저 바르셀로나의 것이지 어떤 스타일에도 어떤 유행에도 포함될 수 없는 것처럼 오연하게 세워져 있다. 구엘 공원, 카사 바트요, 카사 밀라. 이들 건축물은 모두 고체가 아니라 액상 형태처럼 유연하게 보인다.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는 괴테의 말대로, 가우디의 건축물에도 직선은 없었다. 대신 동물의 뼈마디가 기둥을 대신하고, 사람의 해골 형상이 유리창을 장식하며, 등가죽에 모자이크 장식을 단 도마뱀이 방문객을 맞아 줬다. 모든 기존 관념을 깨부순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며, 내부가 궁금해졌다. 무릇 건축이 조각품과 다른 점은 공간에 대한 건축가의 번역이 들어가 있기 때문 아닌가.
카사 바트요와 구엘 공원의 내부에 서 있으니 마치 ‘꿈꾸는 동굴’에서 잠들어 있는 듯 최면 상태에 빠졌다. 참으로 기괴한 경험이었다. 나는 유명 건축물을 볼 때마다 ‘대체 건축가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얼마나 배려했던 것일까’ 생각해 본다. 만약 가우디의 집에 계속 머물러 산다면, 신경증 환자가 돼서 정신의 추가 기울어져 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느낌을 받았다. 가우디의 내부는 아름답되 불안정하고, 무의식의 맥박을 더 강렬하게 뛰게 했다. 몽환적인 불안. 그곳에는 직선 즉 현실의 통제력이 전혀 통하지 않는 어지러운 시간들이 널려 있었다.
그렇게 바르셀로나에서, 카탈루냐라는 중심은 강렬하되, 그 파편들은 분분하게 다가왔다. 명품 가게와 가우디의 고전 건축물이 나란히 있고, 지중해 문화와 유럽 문화의 경계가 서서히 섞이며 사라지고 있었다. 이런 인상은 2011년 개봉한 영화 ‘비우티풀’ 때문에 더 심해졌는지도 모른다. 영화 주인공 욱스발은 암으로 죽어 가고 있다. 인력 브로커이자 조폭인 그는 바르셀로나 외곽 이민자들이 거주하는 엘 라발 지역에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간다. 아이들은 어리고 아내는 미성숙하다. 그가 항암 치료를 하러 가는 병원 밖의 풍경에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성당)가 환영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바르셀로나의 상징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밖은 130년간 공사 중이라, 공중에는 거대한 크레인이 솟아 있고, 앞마당은 세계에서 모여든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성당 외부는 예수의 생애를 돌로 만든 수많은 조각물이 채우고 있어서, 어디에도 여백 하나 없었다. 빛과 색으로 가득 찬 성당의 내부를 둘러 보며 생각했다. ‘천국은 이런 곳일까? 아름답지만 거기도 참 복잡하겠구나.’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성당이 아니라 스페인 내전에서 죽은 수많은 착한 유령이 떠도는 성의 일부인 것 같았다.
저녁에는 스페인식 햄인 하몽하몽이 줄줄이 걸린 바에서 칵테일 한 잔을 마셨다. 술에 취해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도시 사람들 특히 남성들은 우디 앨런의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에서처럼 세 명의 여성과 동시에 바람이 날 만큼 끝내주게 멋있다. 축구장의 표 파는 청년조차 배우 올란도 블룸보다 잘생겼다. 헤밍웨이가, 조지 오웰이 이 땅을 위해 기꺼이 싸울 만큼. 바르셀로나의 진짜 눈요기는 가우디의 건축물이 아니라 굳건한 카탈루냐 사람들이었다.
바르셀로나=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