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차기 한국 대통령의 진정한 용기

이심기 뉴욕 특파원 sglee@hankyung.com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집무실에는 기업별 후원 금액이 적힌 표지판이 걸려 있다고 한다. 그는 3년이나 남은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을 직접 챙긴다. 세계 3위 경제대국 일본이라도 올림픽을 치르려면 이렇듯 기업에 손을 벌린다.

올림픽 행사에 들어가는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지원과 개최국 기업 후원이 각각 30%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입장권과 기념주화 판매로 충당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대부분 기업 주머니에서 나온다.“누가 자기 돈으로 50만원, 100만원짜리 기념주화 세트를 사겠느냐. 결국 기업이 사줘야 한다.” 이희범 평창 동계올림픽위원장의 얘기다. 공짜표를 뿌릴 수 없으니 비인기 종목의 경기장을 채우는 일에도 기업의 ‘협조’가 필요할 수 있다.

오는 5월 선출되는 차기 한국 대통령은 하반기에 미국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이 높다. 통상 대통령의 해외 방문에는 경제사절단이 따르는데 지역별로 단체가 정해져 있다. 미국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중국은 대한상공회의소가, 유럽은 한국무역협회가 담당해 왔다. 선진국은 관행적으로 전경련 몫이다.

차기 대통령 방미에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과 같은 민감한 경제 이슈가 의제로 다뤄질 것이다. “미국에서 대규모 투자를 하고, 수천명을 고용하고 있는 대기업 총수가 무조건 사절단에 들어와야 한다. 전경련이 맡아줘야 한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지난 17일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워싱턴DC를 찾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방미단에도 지멘스, BMW 총수가 포함됐다.내년 2월 열리는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에는 한·중·일 정상이 나란히 참석할 전망이다. 정부가 기업에 ‘협조’를 요청할 때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국가의 자존심이 걸린’ 이벤트다. 미국의 막무가내식 통상 압력을 막아낼 수 있도록 힘을 보탤 곳도 대기업이다.

차기 한국 대통령은 이런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정경유착을 끊겠다는, 대기업을 손보겠다는 대통령 후보들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다.

이심기 뉴욕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