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나눔과 상생

천홍욱 < 관세청장 chunhu@customs.go.kr >
출장 때문에 대전역을 자주 이용한다. 대전역 탑승구 옆 빵집에는 어김없이 보이는 장면이 있다. 이 집에는 열차표를 사려는 승객보다 더 긴 줄이 늘어서 있다. 곧 출발할 기차 시간을 생각하면 초조해하거나 서둘러야 할만도 하지만 손님들은 빵이 구워 나오는 그 시간을 기꺼이 감내한다. 맛있기로 유명한 빵을 누군가를 위해 선물할 생각에 서로들 행복한 표정이다.

이곳이 사랑받는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단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400∼500개씩 빵을 더 구워 나눔을 실천해서다. 지난 60여년간 그래왔다. 대전에 와야만 맛볼 수 있도록 전국적인 프랜차이즈 형태의 경영을 포기했다. 대전역에 분점을 낸 것은 외지인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란다.“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라”는 사훈은 지역 주민과 동고동락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란다. 세계적인 맛집 지침서인 미슐랭가이드에도 소개됐고, 교황청이 평신도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대전시민의 자부심이 됐다.

이 빵집을 눈여겨봐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상생 경영의 실천이다. 언제부터인가 이곳에 손님들이 몰려오기 시작하면서 입구에 떡볶이를 파는 포장마차가 생겨났다. 영업에 지장이 있다고 철거를 요구할법한데 이곳은 달랐다. 오히려 매장 건물 한쪽에 수도꼭지를 설치해 포장마차들이 마음껏 물을 써서 장사하도록 배려했다.

경영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직원 400명에게 이윤의 일정 부분을 인센티브로 지급한다. 인사고과의 40%를 차지하는 평가 기준은 동료에 대한 사랑과 배려란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감원은커녕 직원에 대한 복지를 줄이지 않았다. 2005년 공장 화재로 문을 닫을 위기에 몰렸지만 직원들이 공장을 재건해 회사에 보답했다. 이런 모습을 본 대전시민들의 격려 속에 이 빵집은 어느 회사보다도 탄탄한 기업이 됐다.이곳을 방문한 이탈리아 경제학자 루이지노 브루니는 분배와 성장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대안이자 시민 경제의 새로운 모델이라는 평가를 했다. 이런 형태로 경영하는 100개의 중소기업이 생겨난다면 대기업 중심의 한국 경제 구조 자체가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전역을 이용할 때마다 우리 경제의 화두인 ‘상생’을 떠올린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형마트와 골목상권 등 각 분야에서 상생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각자의 첨예한 입장에 밀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각국의 보호무역주의가 거세지는 와중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해야 할 우리 경제 입장에선 상생 경영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 중 하나다. 대전의 한 빵집이 교훈이 될 듯하다.

천홍욱 < 관세청장 chunhu@customs.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