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건비 연 12조 늘어…'구인난' 중소기업 존폐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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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근로시간 주당 52시간으로 단축' 사실상 합의기업들에 12조원에 달하는 인건비 추가 부담을 발생시키는 근로시간 단축이 현실화되고 있다. 정치권이 주당 법정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데 20일 사실상 합의하면서다. 그렇지 않아도 구인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들은 기존 근로자에 대한 임금 보전과 추가 인력 보충에 따라 8조원 이상 부담을 질 것으로 분석됐다.
중소기업 비용 부담만 8.6조 급증
생산량 유지하려면 추가 고용
근로자 임금감소분 보전 불가피
정치권 기습 합의에 기업들 '충격'
최소 8시간 특별연장근로 허용
단계별 단축…유예기간도 늘려야
정치권의 이번 합의엔 특별연장근로시간 허용, 휴일근로 수당에 연장근로 수당을 중복 할증하는 문제 등 세부 쟁점이 빠져 있어 기업들이 더욱 혼란스러워하고 있다.◆중소기업 부담만 8조6000억원
현행 근로시간은 휴일근로와 연장근로를 포함해 주당 68시간(법정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휴일근로 16시간)이다. 이를 주당 52시간으로 줄이자는 게 정치권의 합의사항이다. 그동안 고용노동부가 휴일근로를 법정근로에 포함시키지 않고 별도로 인정해줬기 때문에 68시간 근로가 가능했다.하지만 이번 정치권의 잠정 합의안은 휴일근로를 법정근로에 포함시킨다는 게 핵심이다. 그 경우 휴일근로는 원칙적으로 불허돼 1주일에 최장 52시간까지만 일할 수 있게 된다. 결국 기업들은 생산량을 줄이거나, 지금의 생산량을 유지하려면 고용을 늘려야 한다.
근로시간을 단축하자는 취지도 이렇게 해서 일자리를 늘리자는 것이다.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이 2113시간(2015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766시간을 크게 웃돈다는 점도 근로시간 단축의 명분이다. 일하는 시간을 줄여줘 근로자 삶의 질을 개선하자는 얘기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근로시간 단축이 몰고 올 파장은 크다는 게 기업들의 호소다. 생산량 유지를 위해 사람을 더 뽑아야 하는 것은 물론 근로시간이 줄어드는 데 따른 근로자의 임금 하락분도 보전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는 중소기업들은 회사 존폐가 달린 문제라고 주장했다.한국경제연구원은 근로시간이 주당 52시간으로 단축되면 인력 추가 채용에 따른 인건비 상승 등으로 기업들에 12조3000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분석했다. 한경연은 이 중 중소기업(근로자 300인 미만)이 부담해야 할 비용만 8조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특별연장근로로 충격 완화 필요”
기업은 물론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그동안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노사 합의로 주당 8시간의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적어도 5년 이상은 주당 60시간으로 운영하면서 기업과 근로자들의 적응 여부를 검토한 뒤 52시간으로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근로시간 단축 유예기간이 너무 짧다는 지적도 나온다. 토요일 근로를 없애 주당 정규 근로시간을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이는 것도 2003년 시작해 2009년에야 마무리됐다. 이에 비하면 2~4년인 유예기간은 너무 짧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는 기업 규모에 따라 5단계로 유예기간을 주되 종업원 5~50인 소규모 사업장에는 최소 10년의 유예기간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휴일근로 수당에 연장근로 수당을 중복할 것인가의 문제도 숙제로 남아 있다. 기업들은 고용부의 행정해석을 근거로 연장근로에 대해 통상임금의 50%를 가산하고 휴일근로에 대해서도 50%를 가산해 각각 150%를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근로자들이 2010년께부터 ‘휴일근로도 연장근로이기 때문에 중복 할증해 200%를 지급하라’는 소송을 잇달아 제기하면서 문제가 커졌다. 14건의 소송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이 중 11건은 하급심에서 200% 할증을 인정했다.
대법원이 근로자 손을 들어주면 기업들이 일시에 부담해야 하는 추가 임금은 최소 7조5909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66.3%인 5조339억원을 중소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중기중앙회는 추산했다.한국경영자총협회는 “근로시간 단축은 정치권이 무리하게 밀어붙일 것이 아니다”며 “노동계는 임금 감소를 받아들이고 기업들은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공감대 아래 노사 합의로 이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강현우/심은지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