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화 박근혜 정부] MB정부 인사 파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거들떠도 안봤다

차기 정부에 주는 '실패의 교훈' (1)

1000명 검증 파일 넘겼지만…"그쪽 사람들 왜 쓰나" 거절
'잃어버린 4년' 부른 불통 인사

핵심정책도 갑자기 툭 던져…참모들 '멘붕'

불통인사가 불통정책으로…'창조경제' 개념도 안잡혀
관료들은 단순 지시 수행
무엇이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한 나라의 대통령이 조롱거리가 되고, 급기야 죄인으로 취급받는 신세가 돼 대통령직에서 파면당하기에 이르렀다. 정권 핵심 참모와 장·차관들이 현직에 있다가 줄줄이 구속되는 초유의 일도 벌어졌다. 그러는 사이 국가 정책은 송두리째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한 역사가는 이렇게 말한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잃어버린 4년’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현 시점에서 박근혜 정부에 대한 평가는 섣부를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법 위반 혐의는 아직 다툼 중이다. 하지만 진실 규명과 별개로 이미 대통령이 헌법 위반으로 파면되고, 대통령을 중심으로 추진되던 모든 일이 중도 폐기 위기에 놓인 점만 놓고 봐도 ‘박근혜 정부는 실패했다’고 규정할 수밖에 없다.그렇다면 실패의 원인은 무엇인가. 박근혜 정부 국정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인사들은 한결같이 ‘불통인사에서 비극의 씨앗이 싹텄다’고 지적했다. 한때 친박(친박근혜)계에서 핵심 역할을 하던 인사는 “사람을 쓰는 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자 끝이란 점에서 ‘인사는 만사(萬事)’라고 하지만 박근혜 정부 인사는 모든 게 거꾸로 갔다”며 “결국 ‘인사가 망사(亡事)’가 돼버린 셈”이라고 씁쓸해했다.

시작부터 그랬다. 박 전 대통령은 당선 직후 탕평·화합·통합인사를 내세웠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1000명이 넘는 각계 인사 파일을 넘겨줬지만, 박근혜 당선인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대신 주변에서조차 고개를 갸우뚱하는 인사 카드를 불쑥불쑥 꺼내 들었다. 초대 국무총리 인선부터가 그랬다.

김용준 초대 총리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기도 전에 사전 언론 검증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낙마하던 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한 핵심 인사는 “인사 실패가 일찌감치 터져 반면교사가 되면 오히려 박근혜 정부 앞날에는 보약이 될 수 있다”고 했다.하지만 당시 박 대통령은 이런 기대를 저버리고 불통인사를 계속 밀어붙였다. 누구에게서 추천을 받았고, 어떤 식의 검증을 받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출처 불명의 인사가 이후 4년간 끊임없이 반복됐다.

‘불통인사’는 인사로 그치지 않았다. ‘불통 정책’으로 이어지며 비극을 확대했다. 박근혜 정부의 간판 정책인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그랬다. 박 대통령이 어느 날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화두로 툭 던졌을 때 청와대 관련 핵심 참모들조차 어리둥절해했다고 관련 인사들이 증언을 쏟아냈다. 박근혜 정부의 아이콘으로 통한 창조경제도 시작부터 혼란의 연속이었다. 창조경제 주역인 여러 인사의 증언을 종합하면 집권 2년차까지도 창조경제 개념이 잡히지 않았다. 이들 정책뿐 아니라 수많은 국정 과제가 누구 머리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오는지는 미스터리에 가까웠다. 정책 생산자인 관료들은 떨어진 지시를 수행하는 단순 기술자에 불과했다.

박근혜 정부를 중도 하차하게 한 직접적 계기는 ‘최순실 파문’이었다. 지금까지 검찰 수사로 최순실은 문화체육계 인사와 정책 등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국정 농단을 주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보인 수많은 실패 단초를 모두 최순실과 엮기엔 무리가 있다는 게 정권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인사들의 일관된 증언이다. 한때 박 전 대통령의 참모였던 한 인사는 이렇게 정리했다. “최순실은 박 전 대통령의 불통과 폐쇄형 리더십이 낳은 결과가 가장 극적으로 나타난 한 가지 형태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특별취재팀 park201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