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근로시간 단축 문제로 또 확인된 부실 입법의 실상

갑작스런 근로시간 단축 문제로 평지풍파를 일으켰던 국회가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주당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겠다는 입법계획 자체가 취소된 것은 아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산하 관련 소위원회는 여전히 올해 중 재추진 의사를 감추지 않고 있다. 중소기업들을 위시한 산업계로서는 갑자기 닥친 발등의 불은 피했지만 안그래도 어려운 판에 큰 걱정거리 하나를 새로 떠안게 된 셈이다.

이번 근로시간 단축 파동은 부작용이 큰 사안 자체도 문제지만 우리 국회가 법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또 한 번 여실히 보여줬다. 관련 당사자들의 의견수렴도 제대로 않은 채 법 제정을 너무도 쉽게 여기는 해묵은 악습 말이다. 더구나 이 사안은 앞서 2015년 노·사·정의 대타협안으로 정해진 로드맵이 엄연히 있다. 노·사·정 합의도 개의치 않겠다는 국회의 독주, 즉 ‘입법독재’가 놀랍고 두렵다.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어제 긴급 기자회견에서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현실에서 따라갈 수 없다면 범법자만 양산할 뿐”이라며 강하게 반대했다. 노조 입장만 편향적으로 대변한 포퓰리즘 정책이며, 중소기업에서만 연 8조6000억원의 인건비를 추가로 부담해야 하며, 결국 무인화(로봇화)로 5명의 일자리를 3명으로 줄이게 만드는 법이라는 중기 회장단의 공개적인 반대에 공감한다.

국회가 이런 식으로 법을 만들어선 안 된다. 정년 60세법만 해도 졸속으로 처리되면서 세대 간 ‘고용전쟁’의 큰 요인이 됐다. 근로시간 단축도 임금체제 개편과 함께 논의될 사안이다. 나아가 고용의 유연성 문제와도 결부해 논의하는 게 마땅하다. 국회가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법 개정에 즉각 돌입하지 않은 것도 휴일근로의 수당할증 문제 등 각론에서 정당 간 이견 때문이라고 한다. 시간당 6470원인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자는 대선 공약도 비현실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수년을 끌어온 노동개혁에는 관심도 없이 포퓰리즘 아니면 섣부른 이상주의에 빠진 국회다. 너무도 쉽게 법을 만드는 것은 더 큰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