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연이가 호수에 빠진 날…필드에 '1·1·1 노래'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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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연, LPGA ANA인스퍼레이션 웃다4타 차. 골프대회 마지막 4라운드에서 뒤집기 어려운 타수 차다. 그것도 메이저대회 후반에서 거침없이 질주하는 단독 선두가 이뤄낸 격차라면 반전 드라마가 완성될 확률은 더더욱 낮아진다. 이 희박한 가능성이 거짓말 같은 현실이 됐다. 3일(한국시간)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첫 메이저대회 ANA인스퍼레이션 대회에서다. ‘꾸준함의 화신’ 유소연(27·메디힐)이 그 기적의 주인공이 됐다.
'4벌타' 렉시 톰슨 꺾고 2년8개월 만에 우승컵
유 "내 능력 증명해 기뻐"
◆“기회는 온다” … 기다린 자의 눈물유소연은 이날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의 미션힐스CC 다이나쇼어코스(파72·6763야드)에서 끝난 대회 마지막날 합계 14언더파 274타로 우승했다. ‘장타 여제’ 렉시 톰슨(미국)과 벌인 연장 첫 홀에서 버디를 잡아 파에 그친 톰슨을 꺾었다. 2년8개월여 만의 우승이자 통산 4승째.
1m짜리 우승 퍼팅을 밀어넣은 유소연은 캐디 톰 왓슨을 끌어안고 울었다. 18번홀(파5) 옆에 있는 ‘파피 폰드’에 몸을 던지는 ‘입수 세리머니’로 눈물은 깨끗이 씻겨 내려갔다. 상금 40만5000달러(약 4억5000만원)를 추가한 유소연은 시즌 상금을 79만2166달러로 늘려 상금랭킹 1위를 유지했다.
‘무관의 여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투어 마지막 우승이 2014년 8월 캐나디안여자오픈. 그동안 준우승만 네 번 차지했다. ‘우승하기엔 2%가 부족하다’는 말이 나돌았다. 그러는 사이 든든했던 대형 스폰서와도 헤어졌다.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스윙을 더 간결하게 다듬었다. 그는 “손목을 지나치게 일찍 꺾는 백스윙을 없애고 임팩트 직전 하체가 흔들리는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했다. 비거리가 부쩍 늘었다. 2014년 245.80야드였던 드라이버 비거리는 올해 262.56야드로 17야드나 늘었다. 유소연은 “샷이 콤팩트해지면서 힘이 클럽 헤드에 잘 실렸다”고 말했다. 70%이던 드라이버 정확도도 80.71%로 끌어올렸다. ‘컴퓨터 장타’를 장착하자 그린 공략이 쉬워졌다. 올 들어 아이언 적중률이 83.39%로 투어 전체 1위. 드라이버와 아이언 모두 지난 5년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80%대 정확도에 진입한 것이다. 이런 정확도는 평균 타수 1위로 돌아왔다. 무관의 여왕은 ‘준비된 여왕’으로 바뀌어 있었다.
유소연은 “오랫동안 갈망한 우승”이라며 “많은 사람에게 내가 정상에 오를 능력이 있다는 점을 증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유소연의 우승으로 올 시즌 한국 선수들은 7개 대회에서 5개 대회를 석권했다.
◆‘4벌타라니!’…장타 여제의 눈물이날 톰슨의 우승은 떼어 놓은 당상 같았다. 2위 그룹과 4타 벌어진 11번홀(파5)까지는 그랬다. 상황이 돌변한 것은 12번홀(파4). 2m가 채 안되는 짧은 퍼팅을 놓쳐 보기를 범한 직후다. 갑작스럽게 전날 경기와 관련해 4벌타 통보가 날아든 것이다. 경기위원회 측은 “톰슨이 3라운드 17번홀(파3)에서 파 퍼팅을 준비하면서 볼을 애초 마크한 곳에 두지 않았다”며 4벌타를 부과했다. ‘오소(誤所)플레이’ 2벌타와 이로 인해 성적을 잘못 적어낸 데 대한 2벌타를 합한 가중 처분이었다. TV 시청자의 제보가 뒤늦게 확인된 것이다. 순위표 맨 꼭대기에 있던 톰슨은 순식간에 5위로 추락했다.
갤러리들은 ‘렉시!’를 연호하며 눈물범벅이 된 톰슨을 격렬하게 응원했다. ‘대참사’ 이후에도 버디 3개를 추가하며 재역전 드라마를 쓰는 듯하던 톰슨은 그러나 연장 첫 홀에서 5m짜리 버디 퍼트를 놓치고 말았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