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가결산] 경기 살린다며 11조 추경해놓고…있는 예산 11조 쓰지 않은 정부

지난해 국가결산 심의·의결…예산 불용액 '눈덩이'
공무원·군인연금 떠받치느라 나랏빚 1400조 돌파
세수 9조8000억 더 걷혀…나라살림 적자 줄어
정부가 예산을 잡아놓고 쓰지 못한 돈의 규모가 지난해 11조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지난해 경기를 살리겠다며 어렵게 편성한 추가경정예산 규모와 맞먹는 수준이다.

한국의 국가부채는 1년 새 140조원 늘어나며 사상 처음 1400조원을 넘어섰다. 공무원·군인연금을 유지하는 데 드는 돈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세수 풍년’으로 정부의 재정건전성은 개선됐다.
◆지난해 11조원 안 써

정부는 4일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2016회계연도 국가결산’을 심의·의결했다. 국가결산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예산 불용(不用·미집행)액은 11조원이다. 전년(10조8000억원)보다 2000억원 늘었다. 지난해 9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추경예산안 규모(11조원)와 같다. 정부가 본예산을 제대로 집행했다면 추경을 따로 편성할 필요가 없었던 셈이다.

기획재정부는 이에 대해 적정 수준의 불용액이라고 설명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난해 자연재해가 없어 관련 예산(예비비)을 집행하지 않았고 저(低)금리와 저유가로 예산을 아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해당 불용 예산은 4조원에 달한다. 나머지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지연 등에 따른 연례적인 불용이라고 해명했다. 이승철 기재부 재정관리국장은 “추경 예산은 99.8% 집행했다”며 “매년 불용액이 본예산의 2~3% 발생하는데 지난해에는 3.2%로 집계됐다”고 설명했다.하지만 정부가 애초 책정한 예산을 제대로 집행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정부의 주요 관리 대상 사업(중앙정부 기준) 중 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인 사업 기준으로 예산집행률 100%를 달성하지 못한 부처는 25곳이 넘었다. 사업별로 보면 보건복지부의 신종감염대응체계강화 사업의 작년 예산집행률은 7.2%에 불과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기업입지환경개선 사업(예산집행률 21.8%), 국방부의 연료확보 사업(66.3%), 문화체육관광부의 ‘종교문화활동 및 보존지원’ 사업(43.9%) 등도 예산이 남았다.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매년 주어진 예산도 모두 집행하지 못하는데 추경을 편성하면서 예산 효율성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연금충당부채 눈덩이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를 포함한 넓은 의미의 국가부채는 지난해 1433조1000억원으로 전년보다 139조9000억원 늘었다. 매일 3833억원씩 부채가 늘어난 셈이다. 연금충당부채는 미래에 지급해야 할 연금액을 추정해 현재 가치로 환산한 것이다. 정부가 빌린 돈은 아니지만 기금이 고갈돼 연금을 지급하지 못하면 세금으로 메워야 하기 때문에 광의(廣義)의 부채로 간주한다. 국가부채 중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는 전년보다 92조7000억원 늘어난 752조6000억원으로 전체의 52.5%를 차지했다.연금충당부채 급증은 저금리 영향이 컸다. 충당부채를 계산할 때는 미래가치를 현재가치로 환산하는 할인율(지난 10년 평균)을 적용하는데 저금리에는 할인율도 떨어져 그만큼 쌓아야 하는 부채의 현재가치가 커진다. 지난해 늘어난 연금충당부채의 56.6%인 52조5000억원이 할인율 하락의 영향을 받았다.

여기에 공무원과 군인 인원이 2015년 127만4000명에서 지난해 128만900명으로 늘어났고, 같은 기간 연금 수급자 수가 51만5000명에서 54만3000명으로 증가한 것도 충당부채를 늘린 원인이다. 일각에서는 유력 대선주자들이 공무원 늘리기를 공약으로 내세워 국가 부채 악화 요인이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나라 살림은 개선정부의 살림살이는 개선됐다. 지난해 세수가 정부 목표치(예산 기준)보다 9조8000억원이 더 걷힌 덕이다. 작년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는 16조9000억원 흑자를 기록하며 적자에서 벗어났다.

예산안 기준보다 흑자 폭이 14조4000억원 늘었다.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보여주는 실질 지표인 관리재정수지(통합재정수지에서 사회보장성 기금을 제외한 수치)는 22조7000억원 적자로 전년보다 적자 폭이 15조3000억원 줄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