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반이민정책' 미국인 고용 늘고 임금 상승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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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기자의 Global 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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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에는 전문직 취업비자인 H-1B 발급을 까다롭게 하는 정책이 시행됐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등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정보기술(IT) 분야 이민자들을 겨냥한 조치다. 관련 학위 증명서도 제출하고, 전문 지식이 필요하다는 점을 설득해야 하며, 임금을 얼마 받을지도 조사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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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정책을 쓰면 미국인 고용이 늘어나고 미국인 임금도 상승할까? 미국 역사의 전례를 살펴본 두 편의 논문이 지난 2월 발간됐다. 미국경제연구소(NBER)가 최근 소개한 이 논문들에 따르면, 그 대답은 고급 인력 시장에 관해서는 ‘예스’지만 단순 인력 시장에서는 ‘노’일 가능성이 높다.
존 바운드 미국 미시간대 경제학과 교수 등의 연구진은 1994년부터 2001년 닷컴 거품 붕괴 때까지 미국 IT 업계가 H-1B 프로그램을 통해 외국인 노동력을 대거 수혈한 시기를 분석했다. 이들은 만약 H-1B가 시행되지 않아 외국인 인력 유입이 1994년 수준에 머물렀다면, 미국 컴퓨터 전문가의 임금은 2.6~5.1% 상승했을 것이고 이들을 위한 일자리 수는 6.1~10.8% 증가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컴퓨터 전공자와 다른 전공자 간 대체 가능성이 낮을수록 미국인 전문가에게 유리했다.하지만 그 비용도 컸다. 연구진은 외국인 수혈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관련 기업의 이익률이 낮았을 것이고 IT 상품 가격도 1.9~2.5% 상승했으리라고 분석했다. 외국인 수혈을 통해 미국 IT 업계가 더 부흥했고, 소비자들이 혜택을 누렸다는 뜻이다. 이 논문은 외국인이 혁신에 미친 영향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이민자 혹은 이민 2~3세대가 실리콘밸리의 주역으로 우뚝 선 수많은 사례를 보면 ‘미국인만의 실리콘밸리’는 지금과 상당히 달랐으리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미국 워싱턴의 세계개발센터 소속 마이클 클레멘스 등 연구진이 쓴 두 번째 논문은 좀 더 옛날 이야기다. 1942년부터 1960년대 초까지 미국의 몇몇 주는 농장에 일손이 부족해지자 멕시코인들을 특정 계절에만 고용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수작업 노동력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브러세로(bracero)’라고 불렀다. 이들이 농장 노동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까지 늘어나자 그때도 지금처럼 미국인을 우선 고용하라는 목소리가 커져서 1960년대 초부터 1965년까지 각 주에서는 이 제도를 퇴출했다.
그래서 미국인 노동자의 임금이 올랐을까? 1950~1970년대 시간당 농장 노동자 임금 추이를 보면 오르긴 올랐다. 그러나 브러세로 제도가 있었던 주와 그렇지 않았던 주의 상승률은 거의 같았다. 브러세로 노동력 비중이 20%를 넘었던 주와 그렇지 않았던 주도 큰 차이가 없었다. 멕시코인 노동자가 빠져나가긴 했지만 미국인 노동자가 받은 혜택은 뚜렷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농장주들이 미국인 노동자를 더 고용하거나 임금을 올려주는 대신 노동력을 덜 써도 되는 신기술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물론 두 논문이 다룬 것은 옛날 일이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를 내쫓으면 곧바로 자국 노동자 살림살이가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다.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정치인의 말이 듣기에 좋더라도 쉽게 혹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