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채무재조정 '난항'] 'P플랜' 문턱까지 간 대우조선…CEO 3인 나섰지만 기관들 '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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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사채권자 합의 도출 못해대우조선해양의 법정관리행(行)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은 10일 서울 여의도 산은 본점에서 주요 사채권자 대상 설명회를 열고 대우조선 채무재조정안에 동의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기관투자가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기관투자가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데 사실상 실패함에 따라 대우조선은 초단기 법정관리(P플랜)로 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P플랜 여부는 11일께 판가름날 전망이다. 최대 사채권자인 국민연금이 이르면 11일, 늦어도 12일 투자위원회를 열어 채무재조정안 동의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어서다.
실무진만 보낸 국민연금 등 "국책은행 부담 늘려라"
정부·산업은행, 회사채 상환 보장 추가안 제시할 듯
◆냉랭한 기관투자가이날 설명회에는 이동걸 산은 회장, 최종구 수출입은행장, 정성립 대우조선 사장과 대우조선 회사채를 보유한 32개 기관투자가 중 25곳이 참석했다. 산은은 각 기관의 최고경영자(CEO)나 최고투자책임자(CIO)가 참석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대다수 기관이 팀장 및 과장급 실무자를 보냈다. 국민연금에서도 강면욱 기금운용본부장 대신 채권팀장이 참석했다.
기관투자가들은 정부·산은이 제시한 채무재조정안의 모든 내용을 문제 삼았다. 특히 ‘대우조선 채무재조정안이 산은·수은의 손실만 줄여주는 것 아니냐’는 점을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국책은행이 무담보채권 100%(1조6000억원)를 출자전환하기로 했으나, 선수금환급보증(RG)을 포함한 전체 보유 채권 기준으로는 9.4%의 손실만 부담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산은은 “RG는 미확정 채권이기 때문에 출자전환 대상이 아니다”고 항변했다. 대우조선 경영관리 책임을 물어 산은의 추가 손실 부담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그러나 산은은 국민연금 등 일부 사채권자가 요구한 4월 회사채 우선 상환, 국책은행 추가 감자는 ‘절대 수용 불가’라고 답했다.
기관투자가들은 정부·산은이 3년간 상환유예해달라고 요구한 6750억원(전체 회사채의 50%)의 회사채 회수 가능성도 따졌다. 정부·산은은 “채무재조정안이 계획대로 진행되면 대우조선이 3년 뒤인 2020년 3조3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해 상환유예 회사채를 전부 상환할 수 있다”며 “산은·수은의 보유 채권보다 상환 우선권을 주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관투자가들은 대우조선의 신규 수주 급감, 기존 선박 인도 지연 등으로 유동성 위기가 재발할 경우 회수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국민연금, 이르면 오늘 찬반 결정
설명회가 끝난 뒤 이동걸 회장은 “수은이 인수할 대우조선 영구채 금리를 연 1%로 낮추고, 사채권자에게 우선변제권을 부여하는 게 최선의 양보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관투자가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관 관계자는 “새로운 내용은 전혀 없었으며 산은·수은이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논리를 설명하는 자리였다”고 꼬집었다.
대우조선 회사채 29%(3900억원)를 보유한 국민연금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국민연금은 11일께 투자위원회를 열어 대우조선 채무재조정안에 대해 찬반을 결정할 전망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산은 입장에 변함이 없고 판단할 자료도 부족해 현재로선 부정적인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크다”며 “다만 국민연금 투자위원회는 집단결정 시스템이어서 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회사채 투자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산은이 정말 대우조선을 살리고 싶은 것인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정부와 산은은 국민연금 등 사채권자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금명간 주요 기관투자가에 회사채 50%를 상환유예해주면 3년 뒤 사실상 100%를 갚아주겠다는 추가 협상안을 보낼 것으로 알려졌다. 새 협상안은 산은·수은이 대우조선에 신규 지원하는 2조9000억원 중 회사채 상환자금을 별도 계정으로 분리하는 내용이 될 것으로 전해졌다. 대우조선이 최악의 유동성 위기에 몰리더라도 2020년 이후 3년간 회사채 원리금을 갚을 자금을 별도로 비축해두겠다는 얘기다.
이태명/유창재/정지은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