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개혁 가로막는 '공공기관 설립 근거법'

공공기관 331곳 중 80% '법적 근거' 따라 세워져
사업범위·운영 등 법제화

통폐합·재편 추진하려면 국회서 법 개정 거쳐야 돼
산업환경 변화 대응 어려워
국내 공공기관 열 곳 중 여덟 곳은 별도의 설립법이나 법률 조항에 근거해 신설된 이른바 ‘법정 공공기관’인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통폐합이나 사업재편 등 구조조정을 추진하려 해도 국회 법 개정을 거쳐야 해 제약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전문가들은 협회, 기념관, 문화원 등 공공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공공기관은 법적 설립 근거 설정을 최소화해 정부의 관리 능력과 구조조정에 대한 통제력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공기관 80%는 ‘법적 근거’ 가져11일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가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331곳(공기업·준정부기관·기타공공기관 포함)을 대상으로 법적 근거 설치 현황을 전수조사한 결과 265곳(80.0%)이 법정 공공기관이었다. 74곳은 한국가스공사처럼 별도의 법(한국가스공사법)에 따라 설립됐고 191곳은 한국지역난방공사처럼 관련법 조항(집단에너지사업법 제29조)에 따라 신설됐다.

공공기관 세부 유형별로는 △공기업은 전체 35곳 중 24곳(68.5%) △준정부기관은 전체 88곳 중 82곳(93.1%) △기타공공기관은 전체 208곳 중 159곳(76.4%)이 법정 기관이었다.

시기적으로는 김대중 정부를 기점으로 법정 공공기관이 급증한 것으로 파악됐다. 법정 공공기관은 김영삼 정부 때까진 80곳에 머물렀지만 김대중 정부 때 47곳, 노무현 정부 때 64곳이 신설되면서 191곳으로 급증했다. 이어 이명박 정부(44개)와 박근혜 정부(30개)에선 증가폭이 상대적으로 작아졌지만 증가세는 꾸준히 이어졌다.법적 근거가 오히려 개혁 장애물

하지만 법정 공공기관이 지나치게 많아지면서 정부의 공공부문 개혁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가령 별도 설립법에 근거한 공공기관은 사업 범위, 임원 선임, 이사회 운영, 재정 조달 등 모든 사항들이 법제화돼 있다. 이런 공공기관들은 정부가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통해 사업 재조정이나 통폐합 등 구조조정을 추진하려 해도 쉽지 않다. 국회 법 개정 관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업 재조정이나 통폐합의 필요성은 크지만 노조와 정치권 등의 반대로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있는 대한석탄공사 등이 좋은 예다.이수영 바른사회시민회의 경제팀장은 “설립 근거가 법으로 정해지다 보면 정부는 공공기관을 지정하는 데 그칠 뿐 이들에 대한 ‘구조조정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데 많은 제약을 받는다”며 “김대중 정부부터 추진된 공공개혁이 20년 넘게 별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법정 기관을 최소화하고 공공기관 관리시스템을 유연하게 재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팀장은 “박물관, 지원관, 기념관, 협회, 문화원, 진흥원 등 공공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기타공공기관들은 법적 설립 근거를 최대한 줄이고 정부의 경영통제와 구조조정에 대한 지배력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