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명분 쌓기에 급급한 국민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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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금융부 기자 jeong@hankyung.com“전주까지 찾아갔지만 협상 시간은 고작 7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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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은 대우조선 채무재조정안을 사실상 반대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최종 반대하면 대우조선은 초단기 법정관리(P플랜)에 들어간다. 물론 국민연금이 동의를 주저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정 기업을 살리기 위해 손실을 떠안는 상황이 우려된다는 게 국민연금의 얘기다.
하지만 이미 손실은 피할 수 없다. 국민연금은 대우조선의 분식회계에 속은 회사채 투자자다. 엄밀히 말하면 투자 손실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에게 있다. 그런데도 국민연금은 계속 손실이 걱정된다며 대응책을 외면하고 있다. 심지어 방어논리를 쌓는 데 급급한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정 부행장의 전주행만 해도 그렇다. 국민연금은 지난 10일 밤 산은 측에 “정 부행장이 직접 전주에 내려와달라”며 협상을 제안했다. 정 부행장은 바로 다음날 오전 11시 서울역에서 전주로 가는 KTX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국민연금은 이날 오전 11시에 돌연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사실상 채무재조정에 반대하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국민연금은 정 부행장을 만나서도 ‘직접 실사하고 싶다’는 일방적인 입장만 전달했다. 정 부행장이 전주까지 가는 데엔 2시간가량 걸렸지만 협상 시간은 7분에 불과했다. 정 부행장은 “이것저것 설명 자료를 잔뜩 챙겨갔는데 그쪽에선 전혀 들을 생각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선 국민연금이 기권이나 반대에 앞서 ‘고민했다’는 명분을 쌓기 위해 협상을 요청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향후 감사원이나 국회 등에서 제기될 투자 실패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는 데만 몰입돼 있는 것은 아닌지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정지은 금융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