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모리셔스에 도착하니 무지개가 떴다 내 마음에도…
입력
수정
지면E1
인도양의 섬나라 모리셔스, 야생과 힐링을 맛보다이국의 휴양지를 꿈꿀 때 떠오르는 특유의 환상 같은 것이 있다. 근사한 리조트의 해변에서 천국 같은 시간을 보내는 설렘 말이다. 인도양에 있는 아프리카의 섬나라 모리셔스 여행도 그렇게 시작했다. 따뜻한 해변에서 파스텔톤 바다에 발을 담그고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바닷바람을 충분히 느낀 뒤에는 아프리카 동물들이 숨 쉬는 사파리가 기다린다. 바이크를 몰며 광야를 누비다 보면 잊고 있던 야생의 본능이 되살아난다. 시장과 골목으로 걸음을 옮기면 우리네 1960~1970년대 같은 풍경 속에서 훈훈한 온정이 오간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검은 피부와 말간 눈을 가진 사람들의 웃음에 자꾸만 셔터를 누른다. 원한다면 리조트의 도움을 얻어 어부와 새벽 낚시를 나갈 수도 있고, 현지인 가정을 방문해 함께 저녁을 먹을 수도 있다.리조트 안에서의 시간이 ‘휴식’이라면, 리조트 밖에서의 시간은 ‘발견’의 연속이다. 그 속에서 마주하는 모리셔스 사람들의 미소는 잊기 힘들 정도로 순수하고 따뜻한 위안이 된다.
설…설마 물지는 않겠죠? 새끼 사자와 산책하니 '심장이 쫄깃'
태초의 신비가 있는 '일곱 빛깔 모래 언덕'은 모리셔스의 자랑
산호모래에 반사된 바다는 우아한 크림색을 뽐내고…
사탕수수로 만든 럼 한잔, 흥겨운 세가댄스에 몸을 맡겨봐
산호모래에 반사된 바다는 우아한 크림색을 뽐내고…
사탕수수로 만든 럼 한잔, 흥겨운 세가댄스에 몸을 맡겨봐
비 온 뒤에는 반드시 무지개가 뜬다는 인도양의 섬모리셔스는 인도양의 남서쪽 끝 아프리카 대륙 옆에 떠 있는 작은 화산섬이다. 제주도보다 조금 큰 섬을 둘러싼 해안마다 그림 같은 리조트가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한 북서쪽의 트루 오 비슈(Trou Aux Biches) 해안에 있는 리조트에 짐을 풀었다. 모래사장으로 나가자 눈부신 바다가 펼쳐졌다. 여행을 다니며 여러 색깔의 바다를 봤지만, 크림색으로 빛나는 바다는 처음이었다. 리조트 직원 말에 따르면 하얀 산호모래가 깔린 얕은 바다에 한낮의 햇빛이 그대로 투과돼 순백으로 반짝이는 거란다. 그 앞에선 에메랄드, 코발트, 터키색 같은 근사한 바다들도 평범해질 것만 같았다. 심지어 비가 오는 날조차 풍경이 아름답다고 리조트 직원은 말했다. 모리셔스에서는 비가 그치면 반드시 무지개가 뜬다는 것이다. 처음엔 가볍게 웃어넘겼는데 머무는 동안 정말로 두 번에 한 번꼴로 무지개를 봤다.바다가 좋아서 아침엔 해변 레스토랑에서 천천히 조식을 먹었고, 저녁엔 모래를 밟으며 오래 일몰을 봤다. 물속에 직접 뛰어들어 윈드서핑이나 패러세일링 같은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도 많았다. 모두 바다를 다 가진 듯이 즐거운 표정이었다.
지친 영혼을 깨우는 아프리카의 대지아프리카로 여행 오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 중 또 하나는 사파리 투어다. 트루 오 비슈에서 남쪽으로 약 38㎞ 떨어진 곳에 카셀라 네이처 파크(Casela Nature Park)라는 사파리가 있다. 어린 사자들과의 산책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곳이다. 이른 아침 도착해 자세한 주의사항을 듣고 난 뒤 가이드를 따라나섰다. 먼 숲에서 사자들이 햇살을 받으며 걸어 나오자 심장이 저절로 뛰었다. 어리다고 해도 웬만한 성인보다 크고 이빨도 무척 날카로웠다. 목줄도 없는 사자가 몸을 스칠 정도로 가까이 왔을 땐 숨이 멎는 듯했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 털을 어루만지며 함께 숲길을 걸었다. 살아 있는 생명의 움직임과 뜨거운 온기에 움츠렸던 몸이 깨어나는 듯했다. 이후에는 사륜 모터사이클에 올라 흰 코뿔소, 아프리카 영양, 얼룩말, 기린 등이 서식하는 광야를 누볐다. 오랜만에 맛보는 야생에서의 자유에 가슴이 탁 트였다. 동행한 남자 선배는 질주하듯 달리다 일부러 흙먼지를 내며 커브를 꺾곤 했다.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소년이라도 깨어난 것처럼.카젤라 파크에서 남쪽으로 약 25㎞ 떨어진 샤마렐 지역에는 사람이 살기 전 모리셔스의 자연환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블랙 리버 국립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조금 걸어 올라가면 거대한 원시림에 둘러싸인 물줄기가 눈을 압도한다. 끝없이 쏟아지는 폭포는 실제 높이인 100m보다 훨씬 긴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폭포수 절벽을 뒤로하고 조금 더 올라가면 일곱 빛깔 모래 언덕이 등장한다. 화산재가 풍화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된 독특한 지형이다. 퇴적과 침식의 흔적으로 일렁이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흙 속의 여러 성분은 붉은색, 노란색, 자주색 등의 다양한 빛을 낸다. 여러 흙이 섞여 일곱 색깔을 이룬다고 해 ‘세븐 컬러드 어스’라고 불린다. 갖가지 형태의 토양은 마치 시간의 축적과 변화를 온몸으로 증명하는 듯했다.애잔함이 깃든 모리셔스의 역사
모리셔스는 400여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었다. 1510년 무렵 포르투갈 선원들이 상륙하면서 발길이 머물기 시작했다. 1598년 네덜란드인들이 정착을 시도하면서 황태자 모리스(Maurice)의 이름을 따서 ‘일 모리스(Ile Maurice)’라고 부른 것이 국명의 기원이다. 이후 프랑스와 영국이 차례로 점령하면서 아프리카와 인도인들을 이주시켜 여러 인종이 사는 나라가 됐다.
지금도 모리셔스에는 인도계, 유럽계, 흑인과 백인의 혼혈인 크레올 등 다양한 사람이 어울려 산다. 수도 포트루이스(Port Louis)의 중앙시장에서 여러 인종이 뒤섞인 활기찬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조그만 상점마다 알록달록한 채소, 과일, 곡물, 향신료, 설탕, 럼주, 홍차 등이 즐비했다. 가판엔 영어, 크레올어, 프랑스어가 병기돼 있었다. 채소나 과일은 깜짝 놀랄 만큼 가격이 쌌고, 기념품은 흥정하는 재미가 쏠쏠했다.서로 떨어져 있는 관광지를 다니다 보면 아득한 사탕수수밭이 펼쳐지곤 했다. 사탕수수로 만드는 품질 좋은 설탕과 럼(rum)이 모리셔스의 특산품이다. “18세기 초 프랑스가 모리셔스를 점령할 때 아프리카 노예들을 이주시켜서 사탕수수 농장을 경영하기 시작했어요. 1810년부터는 영국으로 통치권이 넘어갔는데 1833년에 노예제가 폐지돼 많은 농장이 문을 닫았죠.” 운전대를 잡은 가이드 드라이버가 말했다. 리조트나 여행사에 문의하면 운전과 관광을 겸하는 가이드 드라이버를 연결해 준다. 우리 일행을 책임진 라구(Raggoo)라는 이름의 가이드는 해박했다.
“새로운 노동력이 필요해지자 계약 노동 형태로 많은 인도인이 집단 이주했어요. 당시 인도인들에게 이민은 새로운 기회였죠. 노동은 고단했지만 생계는 훨씬 나아질 수 있었으니까요.”
모리셔스는 196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으며 지금의 모리셔스인 상당수가 당시 이주노동자의 후손이라고 그는 말했다. 자신도 역시 인도계 모리시언이라고 했다. 창문 틈으로 사탕수수 짚단을 태우는 냄새가 흘러들어왔다. 달큼하면서도 매캐한 내음에서 지난 역사의 애잔함이 묻어나는 것만 같았다.모리셔스 사탕수수로 만든 럼은 세계로 수출된다. 리조트나 술집마다 각자만의 홈 메이드 럼을 만들어 선보이기도 한다. 제조 과정을 볼 수 있는 농장 생토뱅(Saint Aubin)에 들렀다. 장인이 기계에 사탕수수를 집어넣어 즙을 짜내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기 위해 다가가자 그는 씹어서 맛을 보라며 사탕수수를 한 조각 내밀었다. 입 안에 넣고 씹으니 어지러울 정도로 강한 단맛이 났다. 그 정도로 달아야 발효를 거쳐 럼이 될 수 있다고 장인은 말했다. 증류와 병입까지의 전 과정을 견학한 뒤 여러 가지 럼을 맛봤다. 타는 듯한 목 넘김과 부드러운 향이 묘한 여운을 남겼다.
마침내 마주한 날것 그대로의 모리셔스관광지 사이 사이 지나는 모리셔스의 마을들은 아주 작고 소박했다. 에어컨도 안 돌아가는 시내버스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고, 사탕수수 잎을 손으로 엮어 지붕을 얹은 집도 보였다. 우리네 1960~1970년대 같은 모습이 정겨워 굿랜드(Good land)라는 이름의 동네에서 카메라만 들고 거리로 나섰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순수하고 따뜻했다. 사리를 걸친 인도인 노부인이 눈을 마주치며 미소를 건넸다. 검게 빛나는 피부에 부서질 듯한 곱슬머리를 한 크레올 여자아이들도 시리도록 말갛게 웃었다. 수십년 전의 마이클 잭슨처럼 멋을 낸 청소년들이 먼저 인사를 건네며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카메라를 가까이 가져가면 모두 거짓말처럼 밝은 미소를 보냈다. 지나치게 관광지화돼 때가 묻은 지역과 달리 돈을 요구하는 일 같은 건 없었다. 검고 아름다운 피부, 부드러운 눈길, 따뜻한 손짓까지 모두 정겨웠다. 찍으면 찍을수록 갈증이 나는 듯한 목마름에 계속 셔터를 눌렀다.
모리셔스에서는 현지인 친구를 사귀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몇몇 리조트에서 현지인과 시간을 보내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투숙객이 잠시라도 이곳 사람처럼 살아보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원한다면 누구나 현지 요리사와 크레올 요리를 만들어 볼 수 있다. 어부의 낚싯배를 타고 새벽 낚시를 나가는 것도 가능하다. 평범한 가정집을 방문해 저녁을 먹으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나 역시 비슷한 방법을 통해 현지인들과 어울렸다.우리네 김치찌개처럼 모리셔스 가정에서 자주 해먹는 후가이(rougaille) 만드는 법을 배웠다. 바닷가에 모닥불을 피우고 크레올 전통춤인 세가 댄스도 췄다. 나중엔 동네 사람들이 슬리퍼를 신고 드나드는 선술집에 가서 맥주도 마셨다. 여행이 끝날 때쯤엔 오랜 친구처럼 깊게 정이 들었다. 모리셔스에는 ‘낙원’이나 ‘천국’ 같은 단어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위안이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이국의 섬나라에서 찾고자 하는 여행의 본질인지도 모르겠다.
모리셔스=나보영 여행작가 alleyna2005@naver.com
여행정보모리셔스까지 가는 직항편은 아직 없다. 홍콩, 싱가포르, 두바이 등을 거쳐 간다. 모리셔스 국적기 에어 모리셔스는 홍콩을 경유해 모리셔스로 들어간다. 비행시간은 총 13시간35분이다. 기후는 연중 온난한 아열대성을 띠며 계절은 여름과 겨울 둘만 있다. 여름인 12~5월에는 최고기온이 30도까지 오르고, 겨울인 6~11월에도 25도까지 오른다. 언어는 영어, 프랑스어, 크레올어가 쓰인다. 화폐는 모리셔스 루피(MUR)인데 2017년 4월 기준으로 1모리셔스 루피는 약 32원80전이다. 버스가 전 지역을 다니지만 외곽은 시간이 정확하지 않거나 에어컨이 돌아가지 않을 때가 많다. 도로 교통은 영국과 유사해서 운전석이 오른쪽이고 회전교차로가 많다. 더 많은 정보는 모리셔스관광청에서 영문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해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트루 오 비슈, 콜로니얼 풍의 근사한 저택으로 지어진 생 레지스, 모리셔스 문화를 깊이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있는 질와 애티튜드를 추천한다. 한국에서는 보통 여행사를 통해 항공, 숙소, 가이드 드라이버를 예약한다. 여러 여행사를 비교해 볼 수 있는데, 상세한 정보를 알려주는 곳으로는 드림 아일랜드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