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편집의 리더십'이 경쟁력이다

넘쳐나는 지식과 전문가 네트워크를 활용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이 중요
부문별 트렌드·변화에 대한 감(感)도 벼려야

최원식 < 맥킨지 한국사무소 대표 >
한 해 중 이맘때가 필자에게는 가장 바쁜 때다. 맥킨지의 동료 파트너들을 평가하는 위원회의 멤버이기 때문에 유럽에 가서 110개의 인터뷰를 하고 평가서를 작성해야 했다. 서울에 오자 맥킨지 한국사무소의 신임 컨설턴트를 뽑기 위한 인터뷰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매년 되풀이되는 고단한 노동집약적 프로세스지만 사람이 전부인 맥킨지에서는 역시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두 그룹에 대한 인터뷰를 하면서 새삼 깨닫게 된 것은 경영 컨설팅에서 각광받는 인재상도 그간 많이 진화했다는 것이다. 20년 전만 해도 내 주위에는 여러 산업과 부문을 넘나드는 제너럴리스트가 많았다. 그러다 어느덧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스페셜리스트의 시대가 됐다. 각자의 전문 영역에서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성과와 평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이제는 한 분야의 내공만 갖고는 남다른 가치를 창출하기 버거운 세상이 됐다. 내 고유의 전문성 위에 남들의 전문성을 자유자재로 결합해 활용하는 ‘편집력’이 중요해진 것이다.산업 간 경계가 무너진 것이 주요한 원인이다. 올해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와 MWC(Mobile World Congress)에서는 그 이름이 무색하게도 본래 주인공인 가전, 휴대폰을 넘어서 커넥티드카의 활약이 컸다. 아마존은 로봇을 만들고 월마트는 드론을 시험하며 GE는 클라우드 플랫폼을 운영한다. 맥킨지 또한 머신러닝 회사인 퀀텀블랙과 디자인 회사인 루나를 인수했다. 이러다 보니 컨설턴트 역시 한 산업 또는 부문에서 오랫동안 심화된 전문성과 경험만으로는 급변하는 환경에서 필요한 통찰력 있는 해법을 내놓기 힘들어진 것이다.

편집력이 부상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전문지식과 전문가들이 곧바로 활용될 수 있는 형태로 외부에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기 때문이다. 굳이 내 머릿속의 ‘하드디스크’에 전문 파일을 많이 쟁여놓을 필요 없이 ‘클라우드’에 깔려 있는 방대한 소스로부터 필요한 것만 언제든 꺼내 쓰면 되게 된 것이다. 승부는 이 외부의 자료들을 얼마나 빨리 잘 찾아 합성해 통찰력 깊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가에서 갈린다. 이런 점이 기계가 쉽사리 대체하지 못하는 영역이다. 그러니 정보를 잘 긁어모을 줄 알고 두루두루 지인도 많아서 다양한 내용을 적당히 짜깁기만 잘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의류 편집매장만 하더라도 무작정 갖가지 브랜드의 옷을 걸어놓는다고 성공하지 않는다. 패션 트렌드의 변화를 잘 읽고 브랜드별 특성까지 이해한 뒤 최적의 스타일링을 해놓아야 소비자들이 찾는다. 컨설턴트도 마찬가지다. 산업과 경제를 움직이는 거시적 트렌드와 와해적 변화를 가져올 요소들에 대한 이해를 기본으로 산업별, 부문별 ‘전문지식 클라우드’에 대한 확실한 감을 갖고 있어야 다양한 소스를 자유로이 활용하고 결합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

이번 인터뷰들에서 중요하게 본 대목도 바로 이것이다. 맥킨지 파트너에게는 자신의 전문 영역을 넘어 회사 내 넘쳐나는 지식과 전문가 네트워크를 얼마나 잘 활용해 창의적인 방식으로 문제 해결을 하는가가 숫자로 보여지는 성과 못지않게 중요하다. 바로 ‘편집의 리더십’이다. 신임 컨설턴트에게는 여러 분야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계속 배우려는 자세와 습관이 있는지, 새로운 정보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는지를 본다. ‘편집의 잠재성’을 평가하는 거다.이를 개인을 넘어 기업에 적용하면 개방형 비즈니스 생태계 조성과 활용으로 이어진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업 내부의 전문성을 넘어선 외부와의 파트너십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와해적 기술이 만들어내는 변화와 기회는 범위와 규모가 커서 어떤 산업의 리더 기업이라도 혼자서는 대비하기 어렵다. 타 업계와도 과감하게 협업해야 하는 이유다. 내게 없는 역량과 기술을 창의적이고 유연하게 끌어다 쓰는 편집력이 모두에게 요구되는 시대가 됐다.

최원식 < 맥킨지 한국사무소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