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살바도르 달리 '기억의 지속'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20세기 초 1차 세계대전을 겪은 국제 화단에는 무의식과 꿈의 세계에서 리얼리티를 찾는 초현실주의 화풍이 생겨났다. 전쟁의 공포에 질린 작가들은 이성의 모든 굴레를 배제하고 현실과 비현실 또는 과거와 현재 그 사이에 있는 무의식의 상태를 화폭에 쏟아냈다. 스페인 화가 살바도르 달리(1904~1989)는 스스로 ‘편집광적·비판적 방법’이라 부른 독특한 초현실적 창작기법을 활용해 환각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달리의 ‘기억의 지속’은 인간의 무의식 세계를 편집광적인 방법으로 촘촘하게 기술한 대표작이다. 음침할 정도로 고요한 분위기에 시계의 문자판이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환상적인 내용을 정교하게 그려냈다. 저 멀리에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카다크 해안이 보이고, 앙상한 나뭇가지와 각진 책상의 모서리 등엔 시계가 걸려 있다. 당시 두통에 시달렸던 달리는 작업 중이던 풍경화에 그려넣을 오브제가 떠오르지 않아 불을 끄고 나가려는 순간 두 개의 시계를 발견했다고 한다. 혼미하고 몽롱하게 보이는 시계를 치즈에서 영감을 받아 흘러내리는 방식으로 화면에 옮겼다. 시간도 치즈처럼 물렁거린다고 생각한 것이다. 감정의 모든 문제는 시간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그림으로 상기시키는 게 이채롭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