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CEO & Issue focus] 한국이 액티브X로 골치 아플때…아일랜드 촌뜨기 형제의 '결제 플랫폼'…페이팔 위협하는 10조 유니콘 기업으로
입력
수정
지면B3
스트라이프 창업자 패트릭·존 콜리슨 형제아일랜드 중서부에 리머릭이라는 중세풍 도시가 있다. 패트릭 콜리슨과 존 콜리슨은 이 도시에서 각각 1988년, 1990년 태어난 두 살 터울 형제다. 삼형제 중 첫째, 둘째다. 두 사람은 시골 분위기가 풍기는 리머릭의 좁은 세상 너머 인터넷에서 접하는 세계 각지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실리콘밸리가 주목한'스트라이프'
젊은 과학자 대회서 1위한 '컴퓨터 천재'
19세·17세 때 SW회사 설립해 되팔기도
엘론 머스크·미국 사모펀드 등 투자 나서
개발자들"결제, 너무 간단해 깜짝 놀라"
단 10줄의 코드로 결제 해결 130여개국 통화·비트코인으로도 결제
감춰진 사용료 없고 수수료도 저렴
기업가치 10조5000억까지 뛰어 20대에 자수성가 '억만장자' 대열에
형제는 처음부터 튀는 구석이 있었다. 먼저 두각을 보인 것은 형 패트릭이었다. 여덟 살 때부터 리머릭대에서 컴퓨터 수업을 받았다. 열 살엔 프로그래밍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컴퓨터 천재였다. 10대 때 과학자 아이작 뉴턴의 이름을 따서 ‘아이작’이라는 인공지능을 개발했다. 16세엔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인 크로마를 만들었다. 이것으로 그는 2005년 아일랜드의 ‘젊은 과학자 대회’에서 1등상을 받았다.10대에 첫 회사 설립
2007년 패트릭은 동생 존과 함께 소프트웨어 회사 ‘슈파’를 차렸다. 슈파는 ‘가게’를 뜻하는 아일랜드 말 ‘시오파’에서 따온 이름이다. 두 사람의 나이는 각각 19세, 17세였다.
아일랜드는 다양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지원정책을 펴고 있었지만 슈파는 그 혜택을 받지 못했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미국으로 눈을 돌렸다. 실리콘밸리의 유명 벤처투자회사 Y콤비네이터가 이들에게 주목했다. 실리콘밸리에서 두 사람은 영국 옥스퍼드대 졸업생 하지트와 쿨비 타가를 만났다. 네 사람은 경매식 온라인 판매사이트 이베이를 이용하는 이들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옥토마틱을 창업했다. 패트릭은 당시 매사추세츠공대(MIT)에 다니고 있었지만 회사를 세우는 과정에서 중퇴했다. 슈파는 자연스레 옥토마틱에 흡수됐다. 2008년 5월, 이들은 옥토마틱을 캐나다 라이브커런트미디어에 팔았다.형제는 하룻밤 사이에 큰 돈을 벌었다. 2009년 1월 아일랜드 이브닝헤럴드지는 ‘인터넷의 얼굴을 바꾼 백만장자 소년’이라며 패트릭의 성공 스토리를 보도했다. 구체적으로 그가 320만유로(약 40억원)를 벌었다고 소개했다.
패트릭은 이 기사에서 “회사의 성공은 3년 전 ‘젊은 과학자 대회’에서 1등상을 받아 옥토마틱 투자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덕분”이라며 “돈을 어디 써야 할지는 결정하지 못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훗날의 성취에 견줘보면 아직 ‘새 발의 피’였지만 그때는 몰랐다.
‘모바일 시대의 페이팔’ 평가형제의 진짜 성공은 2010년 온라인 결제 플랫폼을 제공하는 회사 ‘스트라이프’를 창업하면서부터다. Y콤비네이터의 지원을 받은 이력을 바탕으로 이 회사는 페이팔 마피아(페이팔 초기 창업멤버들을 중심으로 한 벤처투자 네트워크의 별칭)의 눈길을 끌었다. 온라인 결제서비스 업체 페이팔의 공동창업자 피터 틸과 전기자동차 제조기업 테슬라 창업자 엘론 머스크, 사모펀드 세쿼이아캐피털, 벤처투자회사 앤드리슨호로위츠 등이 투자했다. 동생 존도 하버드대에 들어갔다가 그만뒀다.
든든한 투자자를 거느린 이 스타트업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스트라이프의 기업 가치는 2011년 2000만달러로 평가받았고, 일찌감치 10억달러 이상의 가치를 지닌 기업을 뜻하는 유니콘으로 분류됐다. 신용카드사 비자의 투자까지 받은 다음에는 작년 11월 기준 92억달러(약 10조5000억원)까지 기업 가치가 뛰었다.
당시 정보기술(IT) 전문매체 테크크런치는 전문가들에게 종전 결제 플랫폼인 페이팔, 구글체크아웃과 스트라이프의 차이점을 물어본 결과 “그건 (페이팔, 구글체크아웃과는 달리) 엿같지 않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전했다. 나머지 플랫폼과 비교하면 훨씬 편리하다는 얘기다. 페이팔 역시 처음 등장했을 때는 혁신적인 온라인 결제시스템이었지만 지금은 ‘고물’ 취급을 받는다.쉽고 안정적이면서도 낮은 수수료
실제 개발자들이 스트라이프 플랫폼을 경험하고 깜짝 놀랐다는 경험담도 많다. 너무 간단해서다. 고객들은 저마다 다른 결제수단을 가지고 저마다 다른 접속 환경에서 결제를 시도한다. 감독당국이 요구하는 규제를 모두 지키면서 오류를 내지 않고 안정적으로 결제되게 하는 일은 많은 개발자에게 ‘괴로움의 원천’이다. 패트릭은 “새로운 앱(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할 때 온라인 결제가 얼마나 어려운지 직접 경험했다.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인터넷 상거래를 줄이는 게 목표인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여전히 액티브X와 공인인증서 등 각종 보안프로그램의 장벽을 넘어야 하는 한국에서는 벗어나기 힘든 환경이다.
스트라이프는 자사 웹사이트에 “우리는 ‘좋지 않았던 옛날’을 기억한다”고 적어뒀다. 그러면서 얼마나 간단한지 예시를 보여주는데, 이름과 카드번호를 입력하는 데 단 10줄의 코드를 제시한다. 고객이 매번 카드번호를 적어넣지 않아도 되도록 이메일을 받는 데는 다섯 줄이면 된다. 쇼핑몰 사이트를 새로 만들든, 애플 안드로이드 등의 앱을 개발하든, 유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결제시스템이 필요하다. 그것을 복잡하게 구현해야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스트라이프는 다양한 프로그래밍 언어와 운영체제(OS)를 지원하며 세계 130여개국 통화와 비트코인으로도 결제할 수 있는 확장성을 갖추고도 안정적이다. 그리고 더 싸다. 통상 카드사 수수료가 거래액의 4~5%인 것과 비교해 이들은 2.9%에 30센트를 더 받는다. 초기 설치비, 월 사용료 등 감춰진 수수료도 전혀 없다.
업무영역 계속 확장
스트라이프는 계속 업무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작년에는 비즈니스 솔루션을 제공하는 ‘웍스 위드 스트라이프’를 선보였다. 블록체인 방식을 이용한 오픈 소스 결제 프로토콜인 ‘스텔라’도 내놨다.
기업 가치가 커지면서 형제의 자산도 계속 불어났다. 27세인 동생 존은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작년 기준으로 선정한 ‘가장 어린 자수성가 억만장자’다. 패트릭보다 두 살 어려서 그렇다. 두 사람의 자산 규모는 각각 약 11억달러(약 1조2500억원)로 평가받고 있다.삼형제인데 막내는 한몫 끼지 않는지 궁금한 이도 있을 것이다. 막내 토미는 장애가 있다. 패트릭은 “막내를 위해 (간편한) 서비스는 단순한 편의를 위한 게 아니라 종전엔 불가능하던 방법으로 쇼핑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