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의 묘지는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에 있다. 죽을 때까지 태어난 마을 반경 30㎞ 밖을 나서지 않은 칸트가 어떻게 러시아 땅에 묻혔을까. 2차 세계대전 때 칸트의 고향인 동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가 소련군에 점령당해 소련(현재 러시아) 영토로 편입됐고 이름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칸트는 1724년 4월22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수공업을 하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형편이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겨우 대학에 들어갔다. 졸업 후 도서관 사서, 가정교사 등으로 일하다 46세 때 정식으로 대학교수가 됐다.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 등 근현대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그의 저작은 모두 교수가 된 뒤에 쓴 것이다.칸트는 인간 이성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면서도 이성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은 합리적 낭만주의자였다. 그의 ‘이성 비판’은 우리가 과학적 엄밀함을 갖고 발언할 수 있는 것은 인식의 세계, 즉 진리의 세계에 대해서뿐임을 분명히 했다.

칸트는 말년에 쓴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에서 국제법에 기반한 국제 연맹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1804년 2월12일 79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