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 회계사는 '문지기의 의무'를 다해야

"2002년 문 닫은 아서 앤더슨처럼 회계부정에 대한 시장 징계는 냉혹
회계사에겐 공익추구 역할도 있어"

이상복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2001년 가을의 엔론 사건을 비롯해 잇따라 드러난 10여개의 분식회계 사건으로 월가는 동요했고 엔론의 붕괴는 미국 경제에 충격적인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실직률은 치솟았고 자본시장은 마비됐다. 당시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주식회사 미국”을 외치면서 헬기를 타고 뉴욕으로 날아갔다. 미국 사회에 대공황이 다시 올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회계법인 아서 앤더슨은 고객인 엔론과의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분식회계를 공모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로 인해 국가의 경제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기대되는 회계사들의 명성은 산산이 부서졌다. 회계를 문화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제대로 이용한 사회는 번영을 구가했다. 피렌체 같은 이탈리아 도시공화국, 황금기의 네덜란드, 18세기의 영국, 19세기의 미국이 그렇다. 그러나 분식회계를 묵인한 사회는 체제 파멸의 길을 걸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에서 시작해 스페인 제국, 루이 14세의 프랑스, 네덜란드 공화정, 대영제국이 그렇다. 분식회계가 국가의 흥망성쇠를 가른 것이다. 건전한 회계관행은 약동하는 자본주의 사회 건설을 도왔고 분식회계와 그로 인한 책임의 부재는 사회불안을 낳아 체제를 파멸시켰다.기업의 회계장부는 스스로에 의해 조작되는 것이 아니다. 사무실 관리인이나 야간 청소부가 조작하는 것도 아니다. 경험이 풍부한 요리사인 회계사에 의해 조리돼 맛을 내게 된다. 왜 그렇게 많은 전문가가 시장을 지키는 ‘문지기’가 되기보다 범죄의 협력자가 되는가. 문지기 역할을 해야 하는 회계법인이 위법행위를 적극적으로 예방해야 하는 의무를 회피하기 때문이다. 엔론 사건은 시장에서 문지기 책임의 실패를 보여주는 전형이다. 문지기란 ‘위법행위를 사전에 방지할 책임이 있는 사적 주체’를 말한다. 문지기는 전문직 종사자인 회계법인, 로펌 등이다. 이들은 시장에서 구축해온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기업의 위법행위를 억지해야 할 이유가 있다. 문지기 책임을 지우는 것은 위법행위에 협력한 문지기들에게 민사적, 형사적, 행정적 제재를 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민사상 천문학적인 손해배상이나 형사소추를 받아 유죄를 선고받을 수 있다. 또 행정당국으로부터의 제재를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분식회계 공모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평판에 의한 제재는 더 가혹하다. 회계사 같은 전문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기업에 자신의 명성과 평판을 파는 비즈니스를 한다. 정직성이라는 명성과 평판을 상실한 회계사들은 기업에 팔 것이 없다. 정직은 시장의 화폐이고, 시장을 투명하게 하며, 국가를 건강하게 한다. 분식회계라는 범죄에 대한 시장의 제재(평판 제재)는 실정법상의 어떤 제재보다 더 신속하고 더 확실하게 회계사들을 파멸로 이끌 수 있다.

15년 전 아서 앤더슨은 실패했다. 역사는 반복되는지 한국에서도 지난달 대우조선 분식회계에 연루된 딜로이트안진 회계법인이 금융당국으로부터 12개월 부분 영업정지 조치를 받았다. 막스 베버는 회계를 자본주의의 성장에 필수적인 문화 요소의 하나로 봤고, ‘창조적 파괴’라는 용어를 만든 조지프 슘페터는 회계를 자본주의의 핵심으로 봤다. 이 말들은 ‘회계사는 자본주의의 파수꾼’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아서 앤더슨 이후 회계사들은 부패하고 비전문적인 직업군으로 인식됐다. 이제라도 회계사들은 문지기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영리 추구도 좋지만 자신의 역할이 공공성 추구에 있음도 명심해야 한다. 국민의 권익보호와 기업의 건전한 경영 및 국가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 공인회계사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이다. 공인회계사는 조사관이자 해부자이고 좋은 의미의 탐정이요 정직의 투사다.

이상복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