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구의 비타민 경제] 규제의 포획이론

최근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봤다. 외국의 한 경찰이 처음에는 열심히 조직폭력배를 단속하고 검거하다가 점점 타락해가는 내용인데, 타락해 가는 과정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열심히 조직폭력배를 단속하지만 성과가 나오지 않아 고민하던 경찰에게 오히려 조직폭력배가 다가와 실적을 올릴 수 있도록 돕겠다는 제안을 한다.

그 이후 조직폭력배는 일부러 작은 사건을 만들어 경찰이 자기들을 작은 죄목으로 검거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 큰 범행은 눈감아 주도록 청탁하기 시작한다. 경찰은 매일같이 검거 실적을 올려서 좋고 조직폭력배는 작은 것을 희생하면서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으니 좋은 것이다. 자신과 친해진 경찰의 승진을 위해 열심히 뛰는 조직폭력배 모습을 보면서 쓴웃음이 나왔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고(故) 조지 스티글러 교수의 ‘규제의 포획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정부가 특정 기업이나 조직을 감독하고 규제하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해당 공무원과 특정 기업이나 조직이 적대적인 관계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를 이해하고 돕는 관계로 발전한다는 내용이다.

미운 사람도 자꾸 얼굴을 마주치면 정이 든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규제의 포획이론은 그보다 더 설득력이 있는 이론이다. 규제를 하던 정부 공무원의 입장에서 일정 시점이 지나 규제를 받는 기업이나 조직이 없으면 자신의 업무도 없어지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보호해 주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이론의 이름에 쓰인 ‘포획’이란 단어도 규제를 받아야 하는 기업이나 조직이 오히려 정부 기관을 자기편으로 포획하게 된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혹시 규제를 받던 기업이나 조직이 망하면 정부가 지나치게 규제해 멀쩡한 기업과 조직을 죽였다고 비난받거나, 이렇게 사정이 어려워질 때까지 정부는 무엇을 했느냐고 비난받을 것이므로 규제를 당하는 기업이나 조직을 절대로 죽일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속사정일 것이다.현실에서도 규제 대상이 아닌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는 수없이 문을 닫고 있다. 하지만 정부 규제를 받는 이름 있는 기업 중에는 아무리 손실이 커져도 문을 닫기는커녕 오히려 정부 도움으로 살아남기도 하는데 이런 이유가 있을 수 있어서다.

물론 규제 포획이 무서워서 경찰을 다 없애고 정부 활동을 모두 중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 사건만 발생하면 정부가 더 감시하고 더 규제해야 한다고 외치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순구 <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